정부가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마련한 재원 10조 원의 대부분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7곳의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가면서 국민의 혈세(血稅)가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전체 저축은행에 대한 고객 불신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보고 1일 저축은행 업무와 관련된 팀장 이상 간부를 소집해 특별대책회의를 여는 등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 검사를 강화하기 위해 금감원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4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이 순식간에 동날 위기에 처했다. 예보는 은행과 보험사 등이 낸 예금보험료 5000억 원을 재원으로 금융기관에서 차입해 연내 10조 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 처리 등을 위해 2조 원을 미리 차입했기 때문에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은 8조 원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예보는 저축은행 7곳을 처리하기 위해 이 ‘실탄’을 다 쏟아 부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아무도 못 믿는 상황이 됐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1일 오후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저축은행 부실대책을 논의했다. 2월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7곳이 밝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엉터리 숫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저축은행 업계 전반에 대한 고객 불신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당초 7개 저축은행의 BIS 비율이 ―6.19∼6.00%라고 발표했지만 실사 결과 ―91.35∼―5.52%로 모두 자본잠식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감독당국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대책회의에서 간부들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쏟아냈다. 한 간부는 “이제는 아무도 못 믿는 상황이 됐다. 국민도 ‘이제 못 믿겠다’ 하면서 다시 (BIS비율 등 저축은행 건전성을) 확인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부산저축은행만 그렇다고 하면 국민이 믿겠는가. 예금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IS 비율이 엄청나게 나빠진 데 대해 당장 금감원의 ‘부실 검사’ 비판이 나올 것이고, 다른 저축은행의 BIS 비율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생길 것”이라는 자성이 이어졌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은 대출의 75%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올인’한 특수한 사례”라며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이 비율이 30% 미만이어서 예금주들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금감원만으로는 저축은행 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예보의 검사기능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예보에 (단독으로) 저축은행을 상시 감독하고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을 개정해서라도 금감원에 저축은행에 대한 강제조사권과 자료요구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저축은행 및 소속 임직원에 대해서만 자료를 요구하고, 검사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대주주와 관계사 등 저축은행 부실에 영향을 끼친 모든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