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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치영]MIT-KAIST, 닮은 점과 다른 점

입력 | 2011-05-02 03:00:00


신치영 뉴욕 특파원

KAIST에서 4명의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찾아가봤다. KAIST가 설립될 때 모델로 삼았던 MIT의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다.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MIT 캠퍼스에는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상징물이 있다.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듯한 외형으로 MIT 내 대표적인 건물로 손꼽히는 ‘32번 건물’ 로비에 설치된 소화전과 소방호스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총장을 지낸 제롬 와이즈너 전 총장이 “MIT에서 공부하는 것은 소방호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받아 마시는 것과 같다”고 말한 뒤 소화전과 소방호스는 MIT의 상징이 됐다. 학생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공부를 시키는 게 MIT의 전통이다. 1984년부터 MIT 전기공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는 이해승 석좌교수는 “MIT는 ‘학생들은 어차피 가르치는 것의 30%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가르칠수록 많이 습득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MIT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MIT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빈 강의실, 기숙사 등에 처박혀 시험 준비에 열중이었다. 캠퍼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웃고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만큼 학생들이 학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치열한 경쟁, 아무리 공부해도 상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항상 1등만 하다 중간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든 후의 좌절감 등은 KAIST나 MIT 학생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MIT 학생들에게는 KAIST에는 없는 게 있어 보였다. 이들에게는 속을 털어놓고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 이런 상대는 MIT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분출구가 됐다.

물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윤지원 씨에게는 ‘학생지원센터’에서 만나는 전담 카운슬러 제임스가 그런 상대다. 윤 씨는 MIT에 입학하자마자 몸이 안 좋아 쓰러진 일이 있었다. 이때 만난 제임스는 윤 씨의 강의 일정도 조정해주고 좋은 의사를 알아봐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 일이 인연이 돼 윤 씨는 별 일이 없어도 한 달에 두세 차례씩 제임스를 찾아가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경영학과 3학년 임수현 씨는 지도교수에게 여행 얘기에서부터 성적 고민, 수강 신청 등 별 얘기를 다 한다. MIT의 모든 학생은 1학년 때 지도교수가 정해진다. 2, 3년간 지도교수와 만나다 보면 공식적인 교수-학생 관계보다 훨씬 깊은 신뢰와 친밀감이 쌓이게 된다.

엄청난 과제물과 테스트로 학생들을 한계 상황으로까지 몰아넣는 MIT의 교수들도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기로 유명하다. 면담 요청이건, 연구 과제에 대한 상담이건 학생들이 만나고 싶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준다. 그만큼 학생들도 스스럼없이 교수들을 찾는다.

학교 친구들이나 대학원 선배들도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다. 화학과 3학년 이상현 씨는 학부생 기숙사에는 층마다 대학원생이 한 명씩 배정돼 있는데 친형처럼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최근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한 뒤 KAIST 안팎에는 소통 부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에 대해 서남표 총장은 “소통이 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소통이란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도 있다. 카운슬러, 교수, 학생, 선배 등 누가 됐든 학생들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는 게 훌륭한 소통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