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녀에서 독종으로… “친구의 한마디가 승리욕 되살렸죠”
서울 풍문여고 3학년 민교리 양은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조용한 소녀지만 내면에는 불타는 승리욕을 갖고 있었다. ‘이왕 공부할 거면 독해지자’고 마음먹은 민 양은 전교 62등에서 10등으로 수직상승했다.
중학교 때까지 민 양은 공부엔 별 흥미가 없었다. 시험기간 ‘벼락치기’가 전부였다. 성적은 전교 30등 내외. 고등학교에선 상황이 달랐다.
고1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생 435명 중 62등을 차지한 것. 국어·수학은 4등급, 영어는 3등급이었다. ‘아직 고등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그래. 설마 대학에 못 가겠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 가슴에 꽂힌 한마디
“제 성적이 올랐지만 그 친구 성적은 더 올라 저를 추월했던 거죠. 자만했어요, 제가.”(민 양)
민 양은 ‘다음 시험에선 반드시 역전시키리라’ 다짐했다. 친구를 넘어서려면 반에서 3등 안에 들어야 했다.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 ‘발동’이 걸렸다.
수업시간 필기법부터 바꿨다. 선생님이 강조한 대목은 빨간색 볼펜으로 적고,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꼭 알아둬야 할 부분이라 판단되면 파란색 볼펜으로 필기했다.
자율학습시간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공부할 때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새 가사에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 잊었던 승리욕, 다시 불타오르다
민 양은 반 2등으로 고2가 되었다. 하지만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 언어 3등급, 수리 4등급, 외국어 2등급을 받고 말았다. 평소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낮았지만, 너무 실망스러웠다.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너 모의고사 점수는 잘 안 나오는구나….”
숨어 있던 승리욕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이왕 공부할 거면 독해지자.’ 민 양은 오후 11시에 잠을 자 오전 4시면 일어났다. 이때부터 오전 5시 반까지 언어영역 인터넷강의를 듣고, 다시 오전 6시까진 영어단어를 30개씩 외웠다. 오후에는 수학에 2, 3시간을 투자했다. 먼저 ‘기본 수학의 정석’의 기본문제와 유제를 푼 뒤 난도 높은 문제집이나 모의고사 기출문제 찾아 2, 3회 반복해 풀었다.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9개월을 이렇게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앉는 자리도 중요했다. 민 양은 시력이 좋지 않아 앞자리 중 선택해 앉을 수 있었다. 민 양이 뽑은 최고의 자리는 창가 첫 번째 분단의 두 번째 줄.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고 눈도 자주 마주칠 수 있어 최적의 자리라는 것이다.
“근현대사 과목에 나오는 19세기 동아시아 문호개방의 핵심은 조선의 쇄국정책이에요. 하지만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청나라의 양무운동, 일본의 메이지유신까지 알아야 했죠. 시험에 나오진 않아도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은 하늘색 볼펜으로 적었어요.”(민 양)
민 양은 다시 날아올랐다. 고2 1, 2학기 중간·기말고사에서 모두 영어·수학 1등급을 받았다. 전교 425명 중 10등 이내로 진입했다. 고3이 돼 치른 4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선 언어 1등급, 수리 1등급, 외국어 2등급을 받았다. 최상위권으로 뛰어오른 민 양을 보고 친구들은 ‘시크녀’ 대신 ‘독종’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민 양은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진학을 꿈꾼다. 경제적 지식이 부족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대부분의 사람은 TV나 신문 뉴스에서 나오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이슬람채권(일명 수쿠크법안) 같은 경제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워해요. 경제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 설명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민 양)
김종현 기자 nanzz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