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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내털리 드윗]네이처 편집장 그만두고 한국 온 이유

입력 | 2011-05-04 03:00:00


내털리 드윗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연구조정협력디렉터

지난주 미국 신경과학자 프레드 게이지 박사 연구팀은 ‘리프로그래밍’이라는 줄기세포 분야 첨단기술로 정신분열증 신경세포를 대량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위험한 외과적 수술이 불가피한 환자의 뇌세포를 실험실에서 대량 생산해 새로운 차원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 사건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첨단기술을 현실화한 성과로, 2006년 일본 야마나카 신야 박사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피부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꾸는 데 성공한 지 5년 만에 이룬 눈부신 발전이다.

이것이 필자의 심금을 울린 이유는 게이지 박사의 연구가 난치성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완전한 치료를 위한 주춧돌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환자는 세계 인구의 1%에 이른다.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나의 할머니와 이모는 공포와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었고, 뛰어난 지능을 자랑했던 그들의 병들어버린 뇌는 상황 판단을 마비시켜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가족력으로 인한 정신질환 유전자의 화살이 다행히 필자를 빗나갔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암, 알츠하이머, 뇌중풍, 심장병 등 다른 만성질환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감염성 질환의 치료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에 비해 완치가 어렵고 전체 사망률의 60%를 차지하는 만성질환에 대한 인식과 치료제 개발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가혹하게도 알츠하이머나 헌팅턴병 등의 만성질환은 시한부 선고이며, 이런 질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고통을 완화하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게이지 박사 등의 연구 성과는 이런 현실에 대항하는 만성질환 연구자에게 고무적인 질문을 던진다. 환자의 세포를 배양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배양한 환자의 세포 유전자와 여러 환경요인을 조합하여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를 찾는다면 치료 및 예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줄기세포 연구와 신약개발 기술을 융합하여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0년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디렉터직을 제안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10여 년간 네이처 편집장을 하며 줄기세포 및 발생생물학 관련 연구의 선두에 서 있던 필자는 직감적으로 특별한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과학자들은 특수한 시각화 탐색기술로 세포를 분석해 약물을 발굴하고 신약으로 연계하는 연구에 선도적이었고, 이것이 줄기세포를 통한 신약 개발 기법에 이상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7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결핵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전 임상단계까지 발굴했고, 이를 신약으로 연계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을 끝냈다. 다른 질병들과 관련한 다수의 유효 화합물 역시 개발 단계에 있다. 줄기세포를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에 접목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한 보기 드문 연구소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경쟁력을 십분 활용하여 줄기세포 연구를 신약 개발로 연계하겠다는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 필자는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은 막대한 투자를 수반한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특수현미경과 로봇 설비를 사용, 유지, 보수하기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고, 이를 위해 필자도 여느 과학자들처럼 앞다퉈 연구비 지원을 신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국내 줄기세포 연구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세계 연구자들과 공조할 때 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신약 개발의 꿈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한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와 차의과학대 줄기세포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제3차 줄기세포 국제심포지엄은 이를 가속화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털리 드윗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연구조정협력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