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배우 얘기 나오면 수줍어하셨는데…”
《“아유, 요즘 그거 재밌더라. ‘발리에서 생긴 일’, 주인공 조인성이가 나는 좋던데.” 소설가 박완서 씨가 배우 조인성 씨 얘기를 불쑥 꺼냈다. “내가 조인성이가 좋다고 하니까, 조인성이랑 점심 먹을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정말요? 드시죠. 사인도 받고.” “아유, 그렇게까지는…호호.” 박 씨와 후배 문인 유춘강 씨가 2004년 충남 당진에서 봄꽃놀이를 하고 올라오는 길에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좋아하는 남자 배우 얘기가 나오자 박 씨는 소녀처럼 수줍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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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길에서 여성동아 문우회 회원들이 모임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조혜경 이근미 유덕희 최순희 오세아 노순자 우애령 권혜수 박재희 박완서 씨. 예쁜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박완서 씨는 박재희 씨가 아들의 졸업식을 맞아 산 꽃다발을 보고 ‘예쁘다’며 받아 품에 안았다. 문학동네 제공
박 씨는 문학계의 거목으로 불렸지만 사석에서는 스스럼없는 편한 선배였다고 후배 문인들은 책에서 털어놓았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무엇을 주장하거나 우기거나 하시는 법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우리가 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듣고 계시다가 마지막에 한마디 보태시거나,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삐악거리는 병아리들을 지켜보고 있는 어미닭 같았다.”(이혜숙)
박 씨는 후배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다가 반응이 너무 좋으면 “내가 (소설로) 쓸 거야”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고, 문우회 명의로 부조금을 낼 때 자신의 돈을 더 얹어 봉투를 두툼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글에 있어서만은 따끔한 질책을 아끼지 않은 엄한 선배였다. 방송국 중편 공모에 가명으로 신청했다가 당선된 권혜수 씨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 씨에게 뒤늦게 당선자가 자신이라고 밝혔다가 호된 꾸중을 들었다. “장편소설까지 당선된 사람이 문장이 그게 뭐냐. 소재가 진지해서 뽑았지만 문장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일침이었다.
다섯 아이의 엄마로 마흔 살에 등단한 박 씨를 두고 ‘슈퍼맘’이라 부르는 시선도 있지만 이남희 씨는 박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여태껏 나는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 안 두고 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매스컴에선 마치 내가 살림도 완벽하게 잘하면서 작가 생활을 하는 그런 사람인 것처럼 선전하는데, 잘못된 거예요. 난 세상에 슈퍼우먼은 없다고 생각해요.”
긴 시간이 흐른 뒤 조양희 씨가 “훗날 아들을 다시 만나면 반갑지 않으시겠느냐”라고 묻자 박 씨는 눈을 흘기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무슨 반갑기는. 어미보다 뭐가 더 급해서 먼저 가, 네가 왜 나보다 앞질러 가, 이 못난 녀석 같으니, 이 불효자, 맞아라, 맞아야 해.”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