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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에너지 비상대책 내놓고는 잊어버린 정부

입력 | 2011-05-05 03:00:00


정부가 ‘유가 100달러 시대’를 맞아 2월 27일부터 에너지 위기 비상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기념탑 등의 경관조명 소등, 유흥업소 등의 야간조명 소등, 공공기관 차량 5부제 실태를 점검한 결과 비상대책이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지식경제부는 비상대책이 강제 시행된 3월 8일 이후 한 달간 전력소비량이 이전 한 달간에 비해 6.7% 줄었다고 말하지만 에너지를 아끼는 모습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가 책상머리에 앉아 수치만 주무른다면 에너지 절약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취재팀이 돌아본 서울 강북의 유흥가는 소등을 해야 하는 시간에도 네온사인들이 휘황찬란했다. 정부 부처가 입주한 정부과천청사에는 자동차 5부제에 따라 운행이 금지된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정문을 통과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기념탑 분수대 교량의 경관조명을 다시 켜거나 소등 조치를 요일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비상대책을 솔선 시행해야 할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가 이 모양이니 민간 부문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질 턱이 없다.

단속은 아예 부재중이었다. 야간소등을 지키지 않으면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데도 지난 두 달간 적발된 1500여 건 가운데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경우는 8건(400만 원)에 불과했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직원이 자동차 5부제를 어기면 3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실제 부과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위반 차량을 적발해 해당 부처에 통보해도 과태료 부과 대신 당직 추가근무 같은 어정쩡한 조치만 취하고 있다. 비상대책은 그저 국민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홍보용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대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말만 있고 실행은 없는 정부’라는 비난까지는 듣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1970, 80년대와 같은 혹독한 오일쇼크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력 산업은 에너지 다(多)소비 산업이어서 고유가 파고(波高)는 경제에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 절약 정책이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 발표해놓고는 잊어버리는 대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