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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는 ‘테러 공조’… 미국 “파키스탄 정보부, 빈라덴 비호 정황”

입력 | 2011-05-05 03:00:00

파키스탄 “美군사작전, 승인안된 일방적 행동”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파키스탄 정부가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빈라덴을 비호한 핵심 배후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세력 근절을 위해 공조해왔던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미국 정부 문건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미군이 빈라덴이 있는 곳에 접근할 때마다 ISI는 빈라덴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그의 체포를 막아왔다. 이 문건은 2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문건은 “이것이 수년간 미국이 빈라덴 체포에 실패한 주요 원인”이라고 전했다. 또 ISI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을 공항 보안시설을 통해 밀입국시켜 왔으며 미국과 대치하는 탈레반의 투쟁을 돕기 위해 민간인으로 위장시킨 군부대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1948년 설립된 파키스탄 최대 정보기관인 ISI는 파키스탄인 사이에서 ‘정부 내의 또 다른 정부’로 불리며 국내외 주요 사건에 개입해왔다. 파키스탄 탈레반인 하카니 등을 오랫동안 음지에서 도와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ISI는 1999년 미 중앙정보국(CIA)과 손잡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빈라덴 체포 작전을 벌인 적도 있다. 전형적인 이중 플레이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ISI의 빈라덴 비호 정황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 문서에 따르면 2009년 12월 타지키스탄의 대테러 담당 고위관료는 미국 정부에 “빈라덴을 잡기 위한 노력이 파키스탄 첩자들에 의해 무산됐다. 파키스탄 내 많은 사람이 빈라덴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도 3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미국의 빈라덴 체포 작전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며 “파키스탄과 공조할 경우 오히려 체포 대상에게 경계심을 강화시킬 수 있어 공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최대 영자지인 타임스오브인디아는 빈라덴이 은둔했던 아보타바드의 저택이 ISI의 비밀 안가(安家)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ISI가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독립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빈라덴을 비호한 것이 ISI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이 2008년 취임 직후 ISI를 개혁하려다 하루도 안 돼 역풍을 맞았을 정도로 ISI의 힘은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원들은 비호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2001년 9·11 이후 대테러 작전을 위해 파키스탄에 쏟아 붓고 있는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3일 성명을 내고 “미군 특수부대가 빈라덴을 사살하려고 파키스탄 내에서 군사작전을 편 것은 승인되지 않은 일방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