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前총리 암살배후 지목 등 대통령도 손못대는 막강파워
미국과 파키스탄 정부가 근 10년간 오사마 빈라덴 추적을 위해 합동작전을 펴는 동안 파키스탄 정보부(ISI)는 은밀히 빈라덴을 비호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통제받지 않는 ISI의 막강파워가 시선을 끌고 있다. ‘정부 내 또 다른 정부’라고 불리는 ISI는 1970년대 ‘남산’으로 통하던 한국 중앙정보부가 무색할 만큼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 빈라덴 은신처 오래전부터 ISI의 관찰리스트에 있었다
로이터통신은 5일 파키스탄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번에 빈라덴이 사살된 아보타바드의 은신처가 이미 2003, 2004년 당시 알카에다 작전 사령관 아부 파라즈 알리비가 사용했던 은신처 3곳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당시 ISI는 알리비를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의 밀사를 체포해 심문한 결과 이번 빈라덴 은신처를 포함한 3곳을 파악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수년간의 추적 끝에 찾아낸 은신처가 사실은 ISI가 이미 파악하고 있던 곳이라는 심증이 짙은 대목이다. 이 때문에 미 관리들 사이에서는 ISI가 빈라덴 은신처를 알고도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았거나, 더 나아가 빈라덴을 숨겨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에 본부를 둔 ISI는 7국(局) 체제다. 핵심조직은 합동정보국으로 국내외 정보요원들을 관할하고 테러방지, VIP 경호 등을 맡는다. ISI가 일개 정보기관을 넘어서는 막강권력을 갖게 된 것은 설립 배경과 관련이 깊다. 1947년 파키스탄이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제1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다. 창설 당시 파키스탄의 최대 현안이었던 카슈미르 지역의 정보수집으로 기반을 닦은 ISI는 1980년대 반정부 세력 제거를 위한 정보수집과 공작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실세기관으로 우뚝 섰다.
정치인 암살 등 국내 주요 사건에도 개입해온 ISI는 2007년 베나지르 부토 총리를 숨지게 한 알카에다 주도 폭탄테러의 배후로도 지목된 바 있다. 부토 총리의 남편으로 2008년 대통령에 취임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ISI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ISI의 반대에 부닥치자 이를 철회하는 수모를 겪었다. ISI의 빈라덴 비호가 사실이라 해도 이는 자르다리 대통령과는 무관하게 이뤄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ISI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까지 은밀하게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파키스탄 내 난민캠프에서 탈레반을 훈련시키고 자금을 제공해 1996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ISI는 미국의 안보에도 끊임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 핵 개발에 숨은 역할을 한 데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테러 공조가 엇나간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