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뒤편 한차례 교전후 일방적 제압…빈라덴 최후에 무기 잡으려했던 정황
오사마 빈라덴의 제거 작전 당시 미군이 빈라덴 측 경호원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측 간에 치열한 교전이 있었다는 그간 백악관의 설명과는 다른 것이다. 또 빈라덴이 미군과 맞닥뜨릴 당시 자신의 무기(AK-47 소총)를 집으려고 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는 빈라덴의 딸이 “아버지가 생포된 후 가족들 앞에서 처형됐다”고 진술했다는 파키스탄 언론 보도와 상반된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미국 고위관리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전과정을 재구성해 5일 보도했다.
지난주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백악관으로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군사작전을 승인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패네타 국장은 작전지휘를 맡은 윌리엄 맥레이븐 특수작전사령관에게 “가서 빈라덴을 잡아라. 그가 없으면 바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미 해군 네이비실 대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야간에 두세 차례 예행연습을 한 상태였다. 정보당국은 발코니에 널린 빈라덴 가족들의 옷가지들과 외모가 빈라덴과 비슷한 사람이 마당에 나와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
D데이인 2일 오전 1시 반경(파키스탄 시간) 블랙호크 헬기 2대가 빈라덴 은신처에 도착했다. 원래 특수부대 한 팀은 라펠을 타고 건물 지붕에 내리고 다른 팀은 마당에 내릴 계획이었는데 헬기 한 대가 무덥고 산소가 희박한 대기 때문에 비상착륙을 해야 했다. 이에 따라 목표 건물까지 담들을 사이에 두고 헬기 두 대가 모두 마당에 착륙했다.
25명의 네이비실 대원이 진입했을 때 저택 안에는 빈라덴과 무장경호원을 제외하고도 20여 명의 부녀자와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중 누가 무장했는지, 누가 민간인인지 즉각 분간하기 어려웠다. 부대원들은 이 중 일부가 자살폭탄을 몸에 붙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전에 임했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저택 진입 직후 사랑방 건물 뒤편에 있던 빈라덴의 연락책 아부 아흐메드 알쿠웨이티와 맞닥뜨렸다. 알쿠웨이티는 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결국 미군의 총에 숨졌다. 이날 오간 유일한 교전이었다. 그와 함께 있던 여성 한 명도 교전 중 사망했다.
저택의 메인 건물로 들어간 미군은 그 후 상대방의 대응사격 한 번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작전을 이어갔다. 1층에서 알쿠웨이티의 형제 1명이 사격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총으로 쓰러뜨렸다. 문고리에 총을 쏘면서 방마다 수색을 하던 미군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빈라덴의 아들 칼리드도 사살했다. 미군이 3층 방을 뒤지던 끝에 마침내 빈라덴이 있던 방문이 열리자마자 한 여성(다섯 번째 부인으로 추정)이 빈라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었고 부대원들은 그녀의 종아리에 총상을 입혔다. 미군은 이 여성을 자살폭탄 가능성 때문에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빈라덴은 두 발의 총을 맞았는데 한 방은 가슴에, 또 한 방은 왼쪽 눈 위를 명중시켜 두개골 일부가 날아갔다. 당시 빈라덴의 주변에는 AK-47 소총과 권총 한 자루가 있었다.
그 후 대원들은 문서 및 컴퓨터 등을 확보한 뒤 남아있던 민간인들에게 플라스틱 수갑을 채우고 헬기에 올랐다. 기체 이상을 일으켰던 헬기는 폭파해 파기시켰다. 빈라덴을 포함해 5명을 사살한 이 작전은 40분 만에 끝났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