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김모 씨의 시신이 발견된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2리 둔덕산 일대. 경찰은 이 일대가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문경=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단독 자살, 방조 자살, 타살?
경북 문경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이 못 박히고 목이 노끈에 졸려 숨졌다. 또 오른쪽 옆구리에는 흉기로 찔린 상처가 나 있다. 양발에 박힌 대못은 한 뼘 크기인 데다 끝은 구부러진 채로 발견됐다. 자살이라면 직접 손과 발에 잇달아 구멍을 내야 한다. 노끈을 목에 감아서 매듭을 지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혼자 했다고 볼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발을 받치고 있던 나무판도 망치로 때릴 때 무게를 어떻게 견뎠는지 의문이다. 여기에다 가시관까지 쓸 겨를이 있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 남는다. 특히 실행 과정에서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정황에 비춰 볼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살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단독 자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김 씨가 4월 13일 경남 김해시 모 제재소에서 직접 목재를 구입해 간 사실을 5일 확인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십자가 제작도면, 실행계획 등을 적어 놓은 A4용지 3장에 나타난 글씨도 김 씨의 딸로부터 자필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사건 현장에 십자가를 제작한 흔적이 남은 것도 자살로 볼 수 있는 정황이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톱 드릴 칼 등 각종 공구가 현장에 남아 있었고 톱밥과 못 등도 발견됐다. 다툼이나 저항 흔적도 없었던 점도 자살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왜 둔덕산인가?
5일 오후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2리 둔덕산. 문경 시내에서도 승용차로 30여 분 걸릴 정도로 외진 곳이다. 마을에서 둔덕산 정상(해발 969.6m)을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산에 오르기는 쉬운 편이다. 차량 1대가 지날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레저용차량(RV)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100여 m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다. 김 씨는 지난달 이 차량을 구입했다. 산 입구에서 현장까지는 차량으로 30분 정도다. 걸어서는 1시간 걸렸다.
인적은 거의 없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사람은 2명뿐이다. 봄나물을 캐러 왔다는 박모 씨(58·경북 성주시)는 “1년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사람 왕래가 적다는 것은 장소 선택의 또 다른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예수가 처형당한 곳인 골고다 언덕과 산 형세가 비슷하다. 정상에서 약 100m 아래 위치한 이곳은 커다란 선바위가 줄줄이 서 있고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광신도라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부활을 꿈꿨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만난게 된 경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