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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전관예우 공화국’에 공정사회는 헛구호

입력 | 2011-05-06 03:00:00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퇴직 전 3년간의 직무와 관련된 업체에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공무원 준공무원과 업체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임직원들이 취업제한 규정을 피해 관련 기업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년을 3년쯤 앞두고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 총무국 등에 보내 ‘보직 세탁’을 해줬다. 지난해 퇴직자 19명 중 11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 금융권 감사로 취업한 ‘금피아’(금감원+마피아)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소속 5개 계열 저축은행 가운데 4곳의 상임감사가 금감원 출신이다. 전관예우(前官禮遇)의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이들은 특수목적법인(SPC) 120곳이 대주주의 위장계열사임을 알면서도 불법대출 등 2조4000억 원대의 경제범죄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전관예우 관행 정도가 아니라 금감원을 고리로 연결된 조직적 비리에 가깝다.

전관예우의 부패는 정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대법관 퇴임 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로펌 대신 대학으로 간 것이 미담이 됐을 만큼 사법부에는 전관예우가 만연해 있다. 상고 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기각 이유도 써주지 않는다는 말은 법조계의 상식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가 퇴직 전 1년 내 근무한 임지에서는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변호사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도 전관예우 병폐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무원들도 로펌에서 전관예우용으로 모셔간다. 심지어는 변론을 맡은 기업의 세무조사에 대처하기 위해 국세청의 하위직 공무원까지 스카우트한다는 말도 있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가 금융권의 행장,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이 나라는 전관예우라는 거대한 유착관계로 상부구조가 이뤄진 공화국이다.

일본 후쿠시마의 대형 원전사고는 낙하산 인사의 전관예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원전 정책을 입안하는 경제산업성과 안전관리를 책임진 원자력안전보안원의 퇴직 관료들이 도쿄전력에서 전관예우를 즐기느라 철저한 관리 감독을 못했다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보장하는 공직자윤리법부터 개정해 퇴직 공무원의 유관업체 취업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 전관예우 공화국에서 공정 사회는 헛구호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