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이 코드 토커로 동원된 다른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때 나바호족이다. 나바호족의 언어는 매우 복잡해 배우기가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나바호어를 구사하는 비(非)나바호족은 30명도 채 되지 않았고 특히 일본인 중에는 없었다. 미군은 나바호족을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 동원했다. 일본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준 이오지마 전투에서 6명의 나바호족 코드 토커가 약 800개의 메시지를 착오 없이 주고받아 미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코드 토커는 적군에게 체포될 위험에 놓이게 되면 암호 노출을 막기 위해 미군이 사살할 수 있었다.
▷최근 9·11테러의 배후조종자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의 암호로 ‘제로니모’가 사용됐다. 제로니모(1829∼1909)는 미군과 멕시코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설적인 아파치족 전사다. 제로니모가 빈라덴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지자 인디언 사회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제로니모의 증손자 할린 제로니모는 “모든 정부기록에서 작전 암호 제로니모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악인을 필요로 한다. 그 악인이 오늘날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이고 냉전 종식 전에는 소련 스파이였으며 초창기 서부 영화에서는 인디언이었다. 하지만 빈라덴과 제로니모는 다르다. 제로니모에 대해서는 미국인도 외경(畏敬)의 양가(兩價) 감정을 지니고 있다. 미군 공수부대원은 낙하훈련을 할 때 ‘제로니모’를 외치는 전통이 있었다. 그만큼 제로니모는 용감함의 상징이다. 미군 501공수대대와 509연대 1대대는 제로니모를 부대의 별명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흐르더라도 미군이 부대의 별명으로 빈라덴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