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을 26년째 이끌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 스포츠동아DB
올해 70세인 퍼거슨 감독은 손자들이 줄줄이 있는 할아버지이지만 경기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명장으로 군림한다.
다른 구단 감독들과 감정 싸움을 벌이며 화를 낼 때는 화산이 터지듯 폭발하는 퍼거슨 감독은 그래서 '화난 퍼기', '퍼기 분노'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다.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축구스타 중 한명인 데이비드 베컴도 퍼거슨 감독의 이런 '폭발증'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베컴이 맨체스터에서 한창 활약하던 때인 2003년의 일. 라이벌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베컴의 플레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퍼거슨 감독이 탈의실에서 옆에 있던 신발을 냅다 걷어차 베컴의 얼굴과 머리를 강타해 버렸다.
하지만 이런 퍼거슨 감독도 집에만 들어가면 '순한 양'으로 변한다.
바로 '맹장(猛將)' 위에 군림하는 '엄처(嚴妻·엄한 아내)' 캐시 여사 때문이다.
다혈질의 퍼거슨 감독은 '화난 퍼기', '퍼기 분노'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다. 동아일보DB
이 때문에 퍼거슨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6년 간 지휘봉을 잡으면서 획득한 수많은 우승 트로피 하나 집에 전시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퍼거슨 감독은 최근 프리미어리그감독협회의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아내 캐시는 축구 관련 일을 끔찍하게 여긴다. 1999년 축구 업적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을 때도 감동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집안에 축구 관련 우승 트로피를 놔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혹시 집에서 축구 관련 책을 읽으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죠'라고 묻는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1966년 결혼한 퍼거슨 감독 부부가 45년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집에서는 축구 얘기 불가'를 선언한 현명한 캐시 여사 덕분이 아닐까 한다.
캐시 여사가 남편에게 집에서는 축구의 '축'자도 꺼내지 못하게 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부인의 말을 잘 듣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른(?) 퍼거슨 감독도 역시 현명한 남편임에 분명하지만….
국내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현명한 부인의 내조를 잘 따르는 경처가(敬妻家)가 많다.
두 아들과 함께 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스포츠동아DB
2002년 결혼한 뒤 이봉주는 '내조의 여왕' 부인의 말을 잘 따르며 훈련에만 매진한 끝에 통산 41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국민 마라토너'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고 멋지게 은퇴할 수 있었다.
'성공한 남자 뒤에는 훌륭한 아내가 있다'라는 말은 스포츠에도 그대로 통하는 게 틀림없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