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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국제법은 힘이 正義다

입력 | 2011-05-08 20:00:00


황호택 논

백악관 관리들은 오사마 빈라덴이 총을 들고 저항했는지에 관해 결정적으로 말을 바꾸었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對)테러담당 보좌관은 “빈라덴이 여성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며 특수부대원과 교전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빈라덴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번복했다. 인간 방패도 없었다. 브레넌은 흥분한 나머지 악마를 더 악마처럼 보이게 하는 과장법을 썼던 것 같다.

빈라덴의 전쟁법적 지위가 비전투원(non-combatant)이거나 민간인이었다면 무장 여부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고 빈라덴은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창설자이자 최고 사령관이다. 빈라덴은 무고한 시민 3000여 명을 살해하고 미 국방부를 공격했다. 미국으로서 빈라덴은 교전 중 사살한 적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동서고금의 전사(戰史)에는 적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 공격해 승전한 사례가 많다.

미국 네이비실 부대원들은 어두운 방에서 빈라덴이 비무장 상태였다는 것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1초를 몇 개로 쪼갠 순간의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길 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었을 것이다. 빈라덴이 손에 무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자살폭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파키스탄 영토 내에서 미국이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군사작전을 펼친 행위는 주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승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동이며 두 번 다시 이 같은 작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지만 항의의 강도는 세지 않았다. 다분히 국내용 발언으로 해석된다.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의혹마저 제기되는 파키스탄 당국에 미국이 작전을 사전에 통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무장 전투원 사살 문제없어

미국으로부터 대테러 작전과 관련해 연간 30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은 미국의 주권침해를 비난하기보다는 빈라덴을 보호한 일이 없다고 해명하느라 바쁘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일부 미국 언론은 우리가 빈라덴을 포함해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989년 12월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파나마를 침공해 마누엘 노리에가 대통령을 체포 압송해온 적도 있다. 당시 유엔 총회는 미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찬성 75, 반대 20, 기권 39개국으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유엔총회의 결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리에가를 미국 법정에 회부해 마약 밀매 및 돈세탁죄로 40년형을 선고했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빈라덴의 침실에서 나이 어린 부인이 남편을 가로막으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을 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다리를 쏘았을 만큼 민간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반면에 빈라덴의 경우에는 정확하게 머리와 심장을 쏘았다. 빈라덴은 노리에가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달리 아직도 이슬람권에서 인기가 높다. 파키스탄 필리핀은 물론 인도 영국에서도 빈라덴을 사살한 미국을 규탄하는 거리 시위가 발생했다. 그가 살아서 법정에 섰더라면 미국 제국주의의 순교자처럼 행세하며 자살폭탄을 선동하는 무대로 활용했을 것이다. 인류사상 최악의 테러범에게 자기선전과 테러 선동의 기회를 주는 것은 미국의 국가 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따르면 아보타바드 저택 안에 빈라덴이 숨어 있을 확률은 60∼80%였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 헬기들이 파키스탄의 영공 깊숙이 날아가 빈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을 40분 만에 완수하고 이슬람 의식에 따라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아라비아 해에서 수장(水葬)을 마쳤다. 미국의 힘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전광석화(電光石火) 작전이다.

강한 군사력만이 정의 구현 가능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평양에서 북한의 고위직과 저녁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남한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만만한 상대만 골라 때립니다. 미국이 언제 중국이나 러시아를 건드리는 적이 있는가요”라고 빈정거렸다. 북한은 미국의 힘과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외부 세계의 대응이 거셀수록 중국에 바짝 달라붙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천안함 연평도에서 당하고도 북을 응징하지 못했다. 바다 밑바닥을 훑어 ‘1번’ 글씨가 써진 어뢰 추진체를 찾아냈음에도 중국은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북한 편을 들었다. 국제법의 세계에서 법조문의 해석과 증거능력 판단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군사력만이 정의(正義)를 실현할 수 있음을 미국이 확실하게 보여줬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