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 백제문화 다시 꽃피운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이 지난해 10월 디지털로 고증 복원한 정림사 모습.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제공
○ “정림사 복원은 백제문화의 복원”
정림사복원건립추진위원회는 정림사가 백제문화의 대표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복원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이를 위해 지역의 학계는 물론이고 종교·정치·언론계 인사, 주민 등이 공동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유병돈 위원장은 “정림사 복원이 후손들에게 백제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국민서명운동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우 군수는 “정림사 복원을 기폭제로 부여만이 갖고 있는 역사유적들이 복원돼 1400년 전 문화선도국가의 영광된 모습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고증 및 종교 문제 논란
정림사는 538년 백제 성왕이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도읍을 옮긴 직후 국력과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세운 대표 사찰. 문화재 당국은 정림사지(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1942년, 1980년에 시행했으나 가람 배치를 확실히 규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에서 올해 1월까지 실시한 재발굴에서 회랑 좌우측 건물지가 새롭게 발견돼 규모와 조성 방법을 규명하는 성과를 냈다.
그동안 정림사 복원이 미뤄져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증 논란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완벽히 고증되지 않은 정림사 복원은 시기상조라는 견해와 고증 작업이 많이 진전된 데다 완벽한 고증은 불가능한 만큼 서둘러 복원해 문화적 가치를 알려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왔다. 추진위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대백제전을 준비하기 위해 백제문화단지 안에 능사를 건립하면서 백제사찰의 건축양식도 재현했기 때문에 고증 문제도 많이 해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원을 가로막은 또 다른 이유는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종교계가 특정 종교 특혜를 거론하며 복원에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추진위가 이번에 정파와 종파를 초월한 각계의 참여를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문화유적 복원이 의도와 달리 종교 문제로 비치지 않도록 각 종교 대표의 참여는 배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