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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복지포럼]한국 복지의 현 주소

입력 | 2011-05-09 03:00:00

[주제 발표]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6일 열린 ‘100인 복지포럼’ 발표자들은 한국 복지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발전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복지논쟁이 ‘성장이냐 복지냐’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 등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먼저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가 한국 복지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했다.

이 교수는 “한국 복지가 제도적 틀은 완성했지만 아직 내실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복지는 50년 남짓한 기간 공공부조·사회보험·사회서비스가 모두 도입됐고,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 개통으로 한 단계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이 느끼는 복지 체감도는 낮고 사각지대도 넓은 편이다. 이 교수는 “복지 수혜 대상자는 최근 5년간 2.5배 늘었으나 사회복지담당공무원 수는 변함이 없다”며 “인력 부족으로 복지정책의 효율성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머문다. 이 교수는 “복지제도가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1950년대 경제 황금기를 거친 서구사회와 같은 복지 확대는 어렵다고 본다”며 “저출산 고령사회가 다가오는데 잘못된 복지정책으로 투표권이 없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복지 재정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국가채무 순위는 24위로 매우 낮은 편인 반면 재정수지는 4위로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고용은 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은 “한국의 단기적 재정여건은 양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취약하다”며 “재정추계를 고려해 지출 규모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은 “세출을 구조조정하는 한편 점차 세율을 올리고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사업은 한 번 예산이 배정되면 늘기만 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김 위원은 “내년이면 연간 8000만 원 초과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이 33%까지 낮아지고 법인세율도 과표기준이 2억 원으로 상향된다”며 “감세 정책도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경제는 美日 따라가면서, 복지는 북유럽식 모델 추종 모순” ▼

6일 열린 ‘100인 복지포럼’ 1부 세미나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문창진 CHA의과학대 보건복지대학원장, 박능후 경기대 교수, 배준호 한신대 교수,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연구실장,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부 토론의 쟁점은 한국 복지의 문제점과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재정 확보 방안이었다. 동시에 복지 재정에 국한된 복지 논쟁의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

○ 복지 재정 확보, 세출 구조조정 우선


복지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합리적인 지출’이 먼저라는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주장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연구실장은 “정부 지출 가운데 국방과 교육 부문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데 앞으로 복지 지출 규모를 설계할 때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 지출을 결정하기 전에 지출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 실장은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할지, 줄여야 할지 객관적인 기준과 지침이 없다”며 “유럽연합(EU)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안정 및 성장 협약)을 통해 국가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 국가부채는 60% 이하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런 기준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세출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복지 지출 규모의 축소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은 다른 지표는 23위 안이지만 ‘사회적 여건’은 49위를 기록했다. 신 위원은 “지출 항목, 증가속도는 다시 짜더라도 절대 규모는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복지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는지 검토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배준호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는 “사회복지지출만 해도 수조 원이 전혀 위기에 처하지 않은 개인에게 지출되고 있다”며 “세출 구조조정을 하려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질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에 매년 2조 원씩 국고가 들어가는데 이를 사회복지지출로 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주택건설이 사회개발로, 농업 보조금이 경제개발로 포함돼 있다”며 “경제개발, 사회개발 지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적과 다른 지출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 교수는 “증세보다 세출·세입 구조조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며 “예산 항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세 확대 불가피


이 교수와 김 위원은 앞선 발표에서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에 비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이 복지 확대에는 긍정적이지만 조세 부담에는 부정적이라는 분석이다.

홍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의 불안, 청년 세대의 기업가 정신 상실은 저복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는 다시 복지 욕구를 증가시킨다”며 “과거처럼 덜 먹고 덜 쓰는 방식으로 복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을 꺼냈다. 증세 등 장기적인 복지 재정 확충 방안을 내놓아야 복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신 실장 역시 무상급식 논란 등을 지켜보면서 “결국 복지 수준이 국민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실장은 “유럽을 봐도 정치인이 복지를 확대한다는 공약을 내놓으면 국민은 솔깃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들이 내놓는 공약 이면에 있는 ‘나의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추가 부담이 생긴다는 점을 유권자와 공유하고 정부와 정치인이 국민을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며 “1억2000만 원 이상 과세표준구간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 미일식 경제와 북유럽식 복지 양립?


배 교수는 “한국은 1996년 이미 사회보장기본법을 제정했고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개정 문제를 제기했다”며 “일본은 사회보장기본법이 없는 것에 비하면 우리 복지 수준이 낮다고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제는 미국과 일본식을, 복지는 북유럽식을 따라가면서 복지 수준이 낮다고 평가하는 건 모순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미일식 경제와 북유럽식 복지가 양립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캐나다 미국 일본 영국은 사회보장제도를 약간만 수정하면 지속가능하다”며 “가미일영 씨(캐나다 미국 일본 영국의 첫 글자를 딴 것)를 우리 사회보장제도의 자문위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재기 넘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배 교수는 연금을 예로 들면서 “이들 나라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낮지만 실질 소득 보장률은 높다”고 말했다. 한국도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며 퇴직연금 등 민간연금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틀에 갇힌 논쟁, 외연을 넓히자


복지 논쟁이 전형적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홍 교수는 “뉴타운에 열광하던 국민이 왜 무상급식에 환호를 보내는가. 이는 예산의 증감이나 제도의 변화로는 파악될 수 없다”며 “한국의 경제발전 패러다임 문제나 유권자들의 선호 변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해야 복지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새로운 복지가 오래된 논의의 틀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모두 물질적인 복지를 얘기하는데 향후 제시할 복지 정책도 여기에 국한될 것이다. 과연 물질만으로 우리가 행복할까. 정신영역으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도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과 복지가 하나이고 일자리가 복지의 우선순위라고 논하지만 정작 일과 복지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학계에서 방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 생애주기에 따라 어떻게 교육시키고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론적 틀을 마련해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과제가 학계에 남아 있다는 자성이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100인 복지포럼 앞으로는… ▼
복지 현안 대두될 때마다 여론수렴-대안 제시 場으로


동아일보는 ‘100인 복지포럼’을 복지 관련 여론수렴과 대안 제시의 장으로 삼고자 합니다. 복지 현안이 대두될 때마다 심포지엄과 지상청문회, 전문가대담 등 다양한 형태로 포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지면에 적극 반영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지속적인 이슈이자 화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100인 복지포럼의 활약을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