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배꼽 잡는 에피소드 광고사 8년근무 경험 녹였죠”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으로 인기 몰이 중인 이현민 작가는 “많은 사람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편안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평범한 광고회사의 기획3팀인 ‘질풍기획팀’의 일상을 익살맞게 그려내는 이현민 작가(31)는 9년차 광고제작사 직원‘이었’다. 기자와 만난 6일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싸서 나오는 참이었다. “회사에서 일도 하고 만화도 그렸는데, 오늘 짐 싸고 나와 지금은 작업장이 없네요.” 코까지 내려온 안경 뒤로 겸연쩍게 웃는 동안의 작가. 질풍기획팀의 익살스럽지만 소심한 박 차장이 웹툰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이 작가는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로 지난해 9월 데뷔해 11월부터 만화를 연재한 신예다. 마감이 무서워 12회 치를 미리 그려놓는 ‘범생이’이며 한국콘텐츠진흥회의 ‘만화캐릭터매니지먼트 원고료 지원’에 데뷔한 지 한 달 만에 당선된 실력파다. 웹툰을 연재한 지 5개월 남짓밖에 안 됐지만 팬클럽 회원은 1600명을 넘어섰다.
웹툰 ‘질풍기획’이 인기를 끄는 것은 8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우러나는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탄탄하게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질풍기획 같은 광고 기획사가 아니라 제작사에 다녔거든요. 기획사가 갑이라면 제작사는 늘 을이었죠.”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악랄한 송 대리에게 복수하고자 믹스커피에 티도 안 나게 ‘당뇨나 걸려라’ 하며 설탕 반 스푼을 넣곤 쾌재를 부르는 소심한 병철 역시 작가 본인의 모습이었다. 상사의 의자에 압핀 하나를 몰래 놓고 소심하게 방석 세 개를 덮어놓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병철의 캐릭터에 많은 직장인이 공감한다. “회사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세요. 제 만화를 읽고 배꼽 빠진다고요. 다들 상사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고 주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인 만화 속 박 차장의 어색한 미소가 나왔다. 선배 만화가 강풀을 가장 좋아한다며 그의 ‘편안함의 저력’을 닮고 싶다고 했지만 사진 속 이 작가의 표정은 편안하지 않아 사진기자의 속을 태웠다. 결국 아기 돌사진을 찍을 때처럼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서야 촬영을 마쳤다.
앞으로 ‘질풍기획’은 어떻게 될까. 이 작가는 박 차장의 러브라인이 곧 등장한다고 귀띔했다. “출근할 때 겪는 에피소드나 야유회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처럼 절반은 모든 직장인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나머지 절반은 광고대행사만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채울 생각이에요.” ‘질풍기획’은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미정이다. “모든 직장인이 웃을 때까지 질풍기획을 해봐야죠.” 그 만화에 그 만화가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