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은 오늘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이례적으로 정치인을 초청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 법요식에는 여야 정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이 참석했다. 초청 대상에는 정치인 대신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가정 등 소외계층과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 원불교를 대표하는 종교인이 들어 있다. 정치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단상에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겠다는 게 조계종의 방침이다.
불교는 지난해 말 이후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불만을 표시하며 한나라당 정치인의 사찰 출입을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특정 정당을 지목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불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조계종은 앞으로 정치인이 절을 찾아와서 하는 개인적인 활동은 막지 않겠지만 축사 기회를 주는 것 같은 별도 의전은 베풀지 않기로 했다. 이 다짐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종교와 정치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계종에서 신망이 높은 도법(道法) 스님은 한나라당 불자회 회원과의 만남에서 “서로가 불편해진 것은 각자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치를 마다하고 출가 사문(沙門)이 됐다. 예수는 “가이샤(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했다. 부처는 가족으로부터, 예수는 제자로부터 집요하게 정치의 유혹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종교가 사회의 목탁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물신화하는 세속을 꾸짖는 것은 본연의 일이다. 그런 경우가 아닌 한 종교는 종교의 길을,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는 게 마땅하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낸 혜국(慧國) 스님은 본보 인터뷰에서 “종교까지 정치화하면 큰 손실”이라며 “서로 본분을 지켜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인과 정치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종교가 화합과 치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이 줄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