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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장기복지 재정계획’ 보고서 살펴보니

입력 | 2011-05-10 03:00:00

2050년 복지지출 2619조원 올 총예산의 8배
재정적자 GDP 대비 18.7% 그리스보다 높아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복지 지출 규모는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7.5%에 불과해 멕시코(7.2%)를 제외하면 가장 낮다. OECD 평균인 19.3%는 물론 유럽에 비해 복지 제도가 상대적으로 덜 갖춰진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18.7%)이나 미국(16.2)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역시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다. 복지혜택을 받을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고 세금 낼 사람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면서 현재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복지지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복지지출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세금을 늘려야 하지만 납세자 반발을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경제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이 늘어나는 복지지출과 악화되는 재정건전성, 활로를 찾지 못하는 증세(增稅) 등 ‘복지 트릴레마(trilemma·3중 딜레마)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세금 늘려도 재정악화 불가피

기획재정부가 한국재정학회 안종범 교수(성균관대)에게 맡긴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정부의 공공사회지출은 2619조 원에 이른다. 올해 정부 예산인 309조 원의 8배를 넘는 막대한 돈을 복지에 쏟아 부어야 하는 셈이다.

복지지출 확대는 정부의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적자는 203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 적자에서 2040년 11.9%, 2050년에는 18.7%까지 늘어난다. 이는 연간 10% 안팎의 재정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은 물론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았던 2009년 그리스의 재정적자(15.4%)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늘어나는 재정적자는 국가부채 확대로 이어져 2050년에는 국가부채가 GDP의 2배를 넘을 것(216.4%)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나랏빚을 지고 있는 일본(198.4%)보다도 높은 수치다.

안 교수는 “막대한 국가부채 대부분을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며 “지금과 같은 복지지출 증가추세가 계속되면 한국은 남유럽과 비슷한 재정위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금을 크게 늘리지 않는 이상 재정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금 부담이 지금보다 2배가량 늘어나더라도 국가채무를 GDP 대비 60%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2030년 이후에는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고용·산재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복지지출은 줄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복지 개혁 정치권 문턱 넘어설까

정부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기존 복지체계를 뿌리부터 뜯어고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올 초부터 복지대책반을 구성해 4대 보험은 물론 기초생활보장을 비롯한 사회보장 체계, 양육비 지원과 같은 사회복지서비스 등 복지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4대 보험과 함께 기초생활보장 체계 역시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소득 144만 원 이하면 월 118만 원가량을 지원해 주는 제도. 기초생활비를 받는 가구는 2001년 약 70만 가구에서 2009년 88만 가구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하는 정부 예산은 올해 7조5000억 원으로 전체 복지 예산의 10%에 육박한다.

정부는 가구원의 수와 소득만 맞으면 생계비와 주거비, 교육·의료비를 모두 지원해주는 현행 기초생활보장 체계에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지원해주다 보니 의료비 지원이나 교육비 지원만 필요한 차상위 계층에 돌아가는 몫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계비와 주거비, 교육·의료비를 쪼개 지원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복지제도 개편은 정부 지원을 받았던 복지 수혜자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내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당파를 가릴 것 없이 복지 확대 일변도로 가고 있어 정부의 이런 구성은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소지가 크다. 더욱이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새롭게 선출된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년으로 예정된 법인세 감세에 대해 공개적으로 철회하는 등 친(親)서민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조세감면제도 정비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