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중의 3D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
1988년 설립된 주물 기업 아이엘공업은 수백억 원의 매출보다 100년 이상 가는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용섭 대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평택시 아이엘공업 공장의 모습. 평택=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주물은 정해진 형틀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주물 기업의 생산량은 연간 220만∼250만 t가량, 금액으로는 4조∼5조 원 선이다. 생산 금액이 적을 뿐 아니라 국내 500여 주물 기업의 82%가 종업원 50명 미만인 영세한 산업이다. 그러나 주물은 제조업의 기본 장비인 공작기계는 기본이고 자동차·중장비 부품, 조선 기자재 등을 만들어내는 핵심 산업이다.
1988년 창업 이후 20여 년간 주물 한길을 걸어 온 최용섭 ‘아이엘공업’ 대표(58)는 “주물 없이는 자르고 붙일 수도 없고, 부품을 생산할 수도 없으니 최첨단 전자장비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35명이 일하는 이 회사의 매출은 40억 원 선, 올해 목표는 45억 원이다.
주물조합 관계자는 “주물의 핵심은 적정 온도에서 쇳물을 붓고, 얼마나 매끄럽게 탈사와 사상을 하느냐 하는 것”이라며 “기계화를 한다 해도 마무리는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이나 독일이 주물 분야의 강국으로 평가받는 것도 ‘결정적 마무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주물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완전히 식기 전에는 제품을 자를 수 없어 불량품을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를 ‘맨 파워’로 극복하고 있지만 선진국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고,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첨단 시스템 도입과 신제품 연구개발(R&D)을 위해 정부가 정책금융 등을 통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엘공업은 자체적으로 R&D를 해왔다. 영업이익률이 채 3%가 안 되는 현실에서도 아이엘공업은 2005년 2억 원이 넘는 돈을 R&D에 투입해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검사장비 받침대 국산화에 성공했다. 최 대표는 “고열에도 뒤틀림 없이 견딜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인데, 이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면서도 “R&D에 더 박차를 가하고 싶지만 여력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영업이익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장래 목표를 묻자 최 대표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니 굳이 앓는 소리를 할 생각도 없다”며 “아이엘공업을 작지만 오래가는, 100년 가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중 한 명에게 회사를 맡길 계획이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기술력과 꿈이 있는 직원에게 회사를 맡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20여 년 동안 마음 편히 잠을 자본 날이 얼마 안 되고, 3D 중 3D인 일이지만, 그가 평생을 매진한 이유는 하나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내가 힘들다고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며 “이름난 큰 기업은 아니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한국 제조업의 기반을 다졌다고 자부하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