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오전(한국 시간) 독일 베를린 위고이스트 호텔에서 독일 통일 당시 주역들과 조찬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볼프강 쇼이블레 전 서독 내무장관(현 재무장관), 이 대통령, 외르크 쇤봄 전 서독 국방부 차관, 호르스트 텔치크 전 서독 총리 외교보좌관,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 베를린=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이 대통령은 독일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김 위원장 초청을 제안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실무진의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김정일 초청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못할 것 없다”는 답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이 제안은 미국 백악관 측과도 얘기가 오간 내용이어서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참모가 밝힌 ‘백악관 측’은 최근 방한했던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비확산 담당 조정관이다.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 닷새 전인 4일, 세이모어 조정관은 서울에서 열린 비공개 모임에 참석해 “북한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시늉만으론 안 되고 북한이 진정성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정치적 의지를 갖고 내년 3월 김정일을 서울로 초청할 의사를 밝혔지만 이는 비교적 ‘로 키’로 접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청와대 고위 인사는 3일 출국 전 브리핑에서 ‘베를린 선언으로 이름 지어질 파격 제안이 준비돼 있느냐’는 질문에 “거창한 이벤트성 선언은 생각하는 게 없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초청 제안에 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은 사실이지만 파격도, 이벤트도 아니라고 청와대 측은 강조했다.
나아가 이번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은 북한이 지난달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제의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역(逆)제안으로 풀이된다. △조건 없이 △언제든 만나 △모든 주제를 놓고 △양자 간에 논의하자는 북한 제안에 △북한의 비핵화와 천안함 연평도 사과를 조건으로 △내년 3월에 △다자(多者) 모임에서 함께 만나자고 다시 제안한 셈이다.
정부는 올해 초 시작된 북한의 잇단 대화공세에 맞서 이런 역제안으로 대응해 왔다. 북한의 거듭된 귀순자 송환 요구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논의하는 적십자 실무접촉 개최를 제의했고, 당국간 백두산 협의 제의에는 “민간 접촉으로 제한하자”며 북한의 공세에 맞대응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유독 베를린에 가면 남북관계에 대한 중요한 발언을 하곤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베를린을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대북 지원 구상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9일 베를린에서 밝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초청 제안’도 비슷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9일 ‘베를린 선언’을 통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을 포함한 대북 경제협력 및 지원 의사를 밝혔다. 당시는 박지원 문화부 장관이 송호경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다음 날이었다. 이 선언은 같은 해 6월 제1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5년 3월 7일 베를린에서 “북한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식량지원 의사를 밝혔다. 이는 같은 해 6월 쌀 15만 t 지원으로 이어졌지만 씨아펙스호 인공기 게양과 삼선비너스호 선원 억류 사건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10일 “통일 독일의 현장이라는 상징성이 한국 대통령들로 하여금 남북관계에 대한 중요한 발표를 베를린에서 하게 만든다”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떠올리는 국민들도 이에 별다른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