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딱지에 곶처럼 돌출된 뿔… 본래이름은 ‘곶게’
꽃게는 이름도 꽃처럼 예쁘다. 꽃게를 찌면 껍데기가 꽃처럼 붉게 변하기 때문에, 또는 집게발 껍데기의 무늬가 꽃무늬 같아서 꽃게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꽃게라는 명칭은 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꽃게의 본래 이름은 ‘곶게’다.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돌출해 나온 부분, 그러니까 장산곶이나 호미곶이라고 할 때의 곶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꼬챙이처럼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숙종 때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꽃게의 어원을 풀이해 놓았다.
여기서 보듯 유모는 게 중에서도 바다에 사는 꽃게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등딱지에 꼬챙이처럼 두 개의 뿔이 솟아 있어 곶게로 불리다 지금은 꽃게가 됐다.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밥도둑이라고 하지만 그건 민물 게를 잘 먹지 않는 요즘 이야기다. 꽃게의 진짜 맛은 간장게장보다 본디 집게발에 있다고 했다.
꽃게는 다른 게보다 크기가 크고 특히 집게발에 살이 많기 때문에 게살이 일품이다. 다산 정약용은 꽃게를 보고 크기가 항아리 같아서 쪄놓으면 달고 맛이 있는데 특히 엄지발이 유명하다고 했다.
6세기 중국 양나라 때 사람인 도홍경도 집게발에 대해 감탄의 말을 남겼다. “튼튼하고 강하기가 호랑이와 다툴 수 있다”고 했는데 정약용이 꽃게의 엄지발이 유명하다고 한 근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게를 좋아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고려 사람들은 해산물을 좋아해서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좋아한다고 적었는데 여기에 게도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 꽃게는 게장도 맛있고 찜도 좋지만 예전에는 꽃게탕을 별미로 꼽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꽃게 요리 중에서도 특히 꽃게탕이 많이 보인다.
특히 정조 임금이 꽃게탕을 좋아했다. 정조가 홍국영과 함께 총애한 신하가 정민시인데 그 처갓집 꽃게탕이 별미라고 한양에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정민시를 불러 장모께 부탁해 꽃게탕을 끓여 먹자고 청했다. 임금의 요청이라며 사위의 부탁을 받은 장모가 꽃게탕을 끓이는데 이를 본 장인 이창중이 자초지종을 듣더니 “신하가 사사롭게 음식을 만들어 임금께 바치면 안 된다”며 꽃게탕을 땅에 엎어버렸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나오는 이야기로 임금이 먹고 싶다는 꽃게탕을 엎은 이창중도 대단하지만 그런 이창중을 벌주지 않고 중용한 정조도 과연 큰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