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 환자에게 타이레놀 2정만 처방 방치 고열 환자 무리한 훈련투입…유족 소송 검토
현역 1급 판정을 받고 건강한 상태로 입대한 육군 훈련병이 무리하게 야간 행군 훈련에 투입됐다 급성 호흡곤란으로 숨진 사실이 12일 뒤늦게 밝혀졌다.
시신 부검결과 숨진 훈련병은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으나 군 당국은 사전 진단은커녕 고열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타이레놀 2정만 처방한 것으로 드러나 군의 환자관리가 허점투성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연세대 재학 중 올해 3월24일 입대했다 숨진 노모(23) 훈련병의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 중이다.
복귀 후 그는 37.9도의 고열 증세를 보여 오전 3시40분경 분대장(일병)을 따라 연대 의무실로 가 진료를 받은 뒤 내무실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러나 상태가 더 나빠지고 열이 내리지 않자 훈련소 측은 낮 12시20분경 그를 육군훈련소 지구병원으로 후송했다.
지구병원 측은 노 훈련병의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는 등 폐혈증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자 오후 3시30분경 민간병원인 건양대학교 병원으로 옮겼다.
건양대 병원 측은 균을 죽이는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했으나 노 훈련병은 다음날인 24일 오전 7시경 숨을 거뒀다. 추정 사인은 폐혈증에 따른 급성호흡곤란 증후군이었다.
노 훈련병의 아버지(52)는 "23일 새벽 고열로 의무실에 갔을 때 빨리 후송했다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훈련소의 초기 조치가 미흡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해당 연대 군의관은 야간행군 복귀 후 환자 진료를 마치고 퇴근한 뒤였으며 일병 계급의 의무병이 당직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해열진통제만 처방한 다음 노 훈련병을 복귀시켰다.
육군훈련소 측은 "의무병이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임의 처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차 확인을 요구하자 "군의관이 직접 진료하지 않고 의무병이 해열제를 처방한 것은 맞다. 그러나 당직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는지는 현재 조사 중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훈련소 측은 "해당 연대 군의관이 야간행군에 동행했으며 오전 3시까지 환자를 진료했으나 당시 노 훈련병은 진료를 받지 않았다. 의무실에서도 노 훈련병의 체온이 그다지 높지 않아 해열제만 처방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 훈련병은 야간 행군 당시 이미 체력이 떨어져 걷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소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고열에 시달리는 노 훈련병을 환자로 분류조차 하지 않았다.
시신을 부검한 결과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 훈련병의 사인은 단순히 폐혈증에 의한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아니었다. 그는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폐혈증과 급성호흡곤란 증세가 유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키 173㎝, 몸무게 70㎏의 다부진 체격으로 현역 1급 판정을 받은 노 훈련병은 입대 전 특별한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잠복기가 수일에 불과한 뇌수막염의 특성을 고려하면 입대 후 병에 걸렸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육군훈련소는 기초 군사훈련 과정 중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야간 행군 훈련을 하면서도 노 훈련병이 뇌수막염에 걸린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한 셈이다.
훈련소 측은 "몸에 이상이 있는 훈련병은 행군에서 제외하고 대신 토요일에 보충훈련을 받도록 했으나 노 훈련병은 행군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부대에서 행군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훈련병의 아버지는 "훈련에서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들었다. 아들이 병을 앓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훈련 참가를 강요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힘없는 훈련병이 선뜻 훈련에 빠지겠다고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노 훈련병의 죽음은 군 내부의 억압적 분위기와 허술한 의료 체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