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한국인의 놀라운 적응력으로 가늠해보면 정치 경제적 적응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같은 종류의 적응은 한 세대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내가 관찰한 이주 한국인들은 이민 1년 만에 80% 이상이 새 차를 샀고, 평균 5년 이상이면 80% 이상이 새 집을 샀다.
‘진짜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문화적인 종류다. 많은 사람에게 의외로 들리겠지만 이 문제의 핵심에는 조선족이 있다.
조선족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본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 중 대부분은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이른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직업’에 종사한다. 일부는 월급을 떼이면서 일하기도 한다. 공장에서 다쳐도 보상은커녕 병원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옌지(延吉) 등에 놀러간 일부 한국인은 지하 유흥업소 등에서 달러를 뿌리며 썩 점잖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조선족들이 북한 사람들과 만난다면 한국인에 대해 뭐라고 말하겠는가. 평범한 북한 사람은 조선족으로부터 그동안 자신이 교육받아온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확인하고, 그런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돈은 많지만 자본주의 영향으로 부패한 국민’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이들이 직접 혹은 건너 전해 들었을 탈북자들의 모습 역시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북한 사람이 생각하는 통일 이후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마도 평범한 북한 사람이 통일을 생각할 때, 자신의 누이와 딸이 어떻게 될지부터 걱정할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북쪽에 많은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변해야 한다. 정치와 관계없는 인도적 지원, 그리고 통일세를 걷어 미래를 준비하는 일, 물질적인 일 말고도 마음으로 북한을 포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만약 통일이 된 다음 한국인들이 북쪽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내려와 우리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래도 우리가 좀 돕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한이 ‘꿈을 이루는 곳’이 되면, 꿈같던 통일도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