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승(124승) 기록을 보유중인 박찬호(오릭스).
그는 1994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도 한 가지 기록을 세웠다. 1965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생긴 이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18번째 선수로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것.
이처럼 신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다.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일단 팀에 드래프트 된 뒤 마이너리그(루키→싱글A→더블A→트리플A)를 거쳐 메이저리거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빠른 선수는 1년, 늦으면 10년이 넘게 마이너리그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다. 보통 3~4년이 걸려 겨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다.
이런 과정을 겪을 만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5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메이저리거가 된 뒤 팀의 간판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클리블랜드).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생활을 비교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우선 연봉에서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추신수는 "마이너리그 시절 한 달에 1000달러(약 110만원)를 월급으로 받았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경기를 하지 않아도 하루에 1500달러를 받는다"고 밝혔다.
선수들이 먹는 음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루키부터 시작해 싱글A, 더블A, 트리플A로 등급이 올라가면서 빵에 잼이 하나씩 추가된다. 스테이크는 트리플A에 가서야 나온다고.
이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뷔페로 제공되는데, 잼은 종류대로 다 있고 매운 소스도 강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서빙 되며, 스테이크도 최상의 것으로 나온다는 것.
또한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에도 마이너리거들은 버스로 10시간, 멀리가면 15시간 씩 앉아 이동하는데 반해, 메이저리거들은 정장을 빼입고 전세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고, 유니폼 등 일체의 장비를 담당 직원들이 알아서 실어준다.
추신수는 "어떤 구단은 전 좌석이 비즈니스 석인 전용기도 있다"며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가 이런 차이를 두는 이유 중의 하나가 동기 부여를 위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의 구분과는 좀 다르지만 한국프로야구에는 1, 2군 제도가 있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1군에 속해 있고, 2군은 주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거나 한 어린 선수들이 기량을 향상시켜가는 무대다.
2군에서의 선수 생활은 연봉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각종 용품의 지원이 원활치 않아 자신이 구입을 해야 하는 등 대우도 좋지 않기 때문에 힘들기만 하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1군 도약을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하는 곳이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한 이승엽. 그가 지난 9일 감독의 지시로 2군으로 떨어졌다.
이승엽이 도대체 누구인가. 2003년 삼성 소속일 때 56개의 홈런을 쳐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국민 타자'아닌가.
그런 그가 지난 3년간 요미우리 1군에서 평균 60경기 밖에 뛰지 못하고 주로 2군에 머물러 있다가 방출당한 뒤 겨우 자리 잡은 오릭스에서도 2군 행이라니….
야구 전문가들은 "바깥쪽 공을 아예 쳐내지를 못한다"는 기술적인 문제점을 공통으로 지적하며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며 자신감도 무너진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런 전문가들의 지적도 참고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타자'의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던 이승엽이 일본에서 2군 선수가 된 초라한 상황을 피눈물을 흘리며 곱씹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타자'의 추락은 수많은 한국 야구팬의 가슴도 멍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록의 사나이' 박찬호도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승엽과 함께 나란히 오릭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는 고비 때마다 결정타를 얻어맞으며 1승4패의 부진 끝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한 것.
박찬호 역시 메이저리그 진출 후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던 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것은 이승엽과 다르지 않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