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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민심, 현장을 가다]민심 추스를 묘수는

입력 | 2011-05-20 03:00:00

“새로운 정책 쏟아내지만 말고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라”




설문 참여 전문가

‘공정사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발표한 집권 후반기 국정방향이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과제로 친(親)서민 중도실용의 경제정책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정책이 제시됐다.

하지만 4·27 재·보궐선거 결과는 친서민과 상생을 표방한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는 체감은커녕 공허한 울림으로 전해졌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지난해 6%를 넘는 초고속 성장에도 좀처럼 온기가 돌지 않는 서민경기, 해결 난망의 청년실업,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으로 민심은 더욱 악화됐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흔들리는 민심을 추스르려면 새로운 정책으로 눈길을 끌기보다 당초 약속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 명확한 원칙에 따른 국책사업 정리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 ‘양극화 해소’ 5점 만점에 2.1점


동아일보 경제부가 대학교수와 민간 및 국책연구소, 시민단체 전문가 등 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친서민 및 동반성장을 포함한 정부의 공정사회 정책은 5점 만점에 2.6점으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공정사회 정책의 방향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높았던 기대치에 비해 나타난 성과가 부진하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사회라는 정책 방향은 좋았지만, 그때그때 줄줄이 정책을 쏟아내면서 국민들의 갈증만 키워놓았을 뿐 실행이 부족했다”며 “너무 많은 대책을 내놓고 수습은 안 되다 보니 정책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은 5점 만점에 2.1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영세자영업자 등 서민층에 대한 세제 지원과 햇살론 등 서민금융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서민생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물가불안으로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 정책이 성장에는 도움이 됐지만 물가상승 압력을 키우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다 서민들에게 유리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주는 환율과 금리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성과평가실장은 “올해 들어 소득불평등도가 약간 완화된 것은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류층이 중산층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국민이 체감하는 소득불평등도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2009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추진하겠다고 밝혔던 중산층 육성을 위한 ‘휴먼뉴딜’ 정책도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중산층 붕괴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자리 정책과 전·월세금 안정,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 부동산 정책 역시 2.5점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청년인턴 제도 등이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산업 육성과 중소기업의 신규 분야 진출이 부진해 민간 부문의 일자리 확대와 청년실업난 해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정책은 땜질식 처방이 반복되면서 심각한 거래부진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은 2.7점, 양육비 지원 확대 등 복지 정책은 3.3점으로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는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15명의 전문가 가운데 8명이 초과이익 공유제에 반대한 것. 김호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는 동반성장의 본질에서 벗어난 정책”이라며 “이익공유 같은 일시적인 정책보다는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같은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달성 가능한 정책에 집중을


전문가들은 임기 중 달성할 수 있는 정책과 그렇지 못한 정책을 구분하고 국민에게 전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정책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은 임기 동안 정부가 삼아야 할 최우선 과제로 전문가들은 15명 중 10명이 일자리 창출을, 8명이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꼽았다. 특히 재·보선 결과에서 나타난 20, 30대 민심 이반의 배경에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청년실업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규제 완화와 신성장산업의 발굴, 창업 활성화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이 고용 창출과 내수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낙수)’ 효과를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당초 정부는 의사와 약사, 변호사, 회계사 등 자격사만 설립할 수 있는 서비스업종의 진입규제를 낮추고 영리법인을 허용해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부처 간 견해차와 이익단체들의 반대를 조율하지 못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낙수 효과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며 “제조업 중심 일자리 확대만으로는 부족한 만큼 서비스업 규제완화를 통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고학력자 청년실업은 불가피하다며 “대학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좀 더 실효성 있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일시적으로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시혜성 중소기업정책은 재정의 낭비만 불러올 뿐이며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중소기업의 성격이 다르듯이 업종별로 차별화된 상생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사회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고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나눠 먹기 식’으로 정치적인 결정을 남발하면 지역 이기주의의 싹만 키울 뿐”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과 경제성, 수익성 중심으로 정부가 원칙을 제시하고 사업을 진행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교수는 “정권 초기 힘이 있을 때 할 일을 임기 말에 하려다 보니 혼란만 커지고 있다”며 “국책사업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예측 가능하고 명확한 기준에 입각한 국책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복지-재정적자 딜레마 해법은 ▼
“정책 실명제 도입 묻지마 사업 제동”

복지 예산을 늘리면서 정부가 맞닥뜨린 딜레마는 재정 적자 문제다.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 복지에 쏟을 돈은 늘지만 성장은 둔화돼 세원(稅源)은 말라간다. 전문가들은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재정적자를 늘리지 않으려면 느슨한 재정집행 과정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묻지 마 국책사업’을 근절하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 계획,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상당수의 국책사업이 면밀한 사업 타당성 검토 없이 추진됐다는 비판이 많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명확한 기준에 따라 타당성을 엄격하게 검토하면 불필요한 사업이 줄어 예산이 절약된다는 설명이다.

초기에 정책을 제안한 담당자 실명을 공개하는 ‘정책 실명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책 담당자의 책임감을 강화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기대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국책사업에 브레이크를 걸자는 것이다. 독일 등 선진국처럼 국책사업이 완료된 뒤 애초 기대한 성과를 달성했는지를 평가하는 ‘사후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공기관도 철저하게 관리돼야 할 대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은 약간 적자가 나도 큰 문제가 없으면 경영에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 편”이라며 “세출 낭비를 막기 위해 지출증가 수준을 면밀히 관리하고, 자산건전성에 대한 감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복지 정책과 일자리를 연계하는 방안에도 신경 써야 한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현 정부의 복지 논의에는 복지와 고용을 어떻게 연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며 “고용이 최고의 복지정책이라는 생각으로 청년층 대상 취업교육 등 다양한 고용창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