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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여왕, 식민지배 ‘간접 사과’… 현지언론들 “감동적 연설”

입력 | 2011-05-20 03:00:00

“상처 받은 아일랜드인들에게 온마음 담아 위로뜻 전합니다”




흰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일어나 입을 열었다.

“아 우치로인 아거스 아 코이자(A Uachatarain agus a charirde).”

‘대통령과 친구 여러분’이라는 아일랜드 말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참석자 127명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와우’라고 감탄사를 외쳤다.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에서도 “진심이 느껴졌다”고 평한 여왕의 18일(현지 시간) 더블린성(城)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영국과 아일랜드는 서로 믿을 만한 친구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항상 상냥한 이웃으로만 지냈던 건 아닙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이 참 많이도 일어났습니다. 이 슬픈 유산 때문에 두 나라 사람들 모두 너무 큰 고통과 상실감에 시달렸습니다. 문제 많던 역사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내 온 마음을 담아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앞으로는 늘 가장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냅시다.”

여왕은 “대통령과 아일랜드 국민을 위해 축배를 들자”는 말로 8분에 걸친 연설을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답했다. 한일관계로 치면 ‘조선총독부’로 쓰던 더블린성에서의 밤은 그렇게 따뜻하게 깊어갔다.

더블린성 연설에 대해 영국 BBC방송은 “누구도 여왕이 사과를 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설은 사실상 사과였다”고 보도했다. ‘아이리시 이그재미너’를 비롯한 아일랜드 언론들도 대부분 연설을 전하며 “감동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워낙 두 나라 간 갈등의 역사가 깊다 보니 여왕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의 대상이 됐고, 사소한 대목에서도 감격과 실망의 반응이 교차했다. 여왕은 연설에 앞서 18일 오전 남편 필립 공과 함께 아일랜드 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인 ‘기네스’ 맥주 공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흔히 영국에서 출판한다고만 알고 있는 ‘기네스북’도 이 브랜드의 이름을 따왔다.

여왕 부부가 공장 7층 그래피티 바에 들어서자 양조 전문가 퍼걸 머리 씨는 즉석에서 하얀 거품이 가득한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뒀다. 그러나 여왕 부부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사양했다.

이에 대해 BBC는 “총리 면담을 앞둔 상황이었다. 정오도 안 됐는데 맥주를 마시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반면 아이리시 이그재미너는 “입만 댔더라도 두 나라 사이의 이질감이 줄어들 수 있었던 기회를 여왕이 놓쳤다”고 평했다.

영국의 ‘아일랜드 침략사’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 시절인 1172년 시작됐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에서 완전 독립한 건 777년 후인 1949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일랜드 섬 북부 6분의 1은 영국령 ‘북아일랜드’다. 이 지역 독립을 두고 찬반이 맞서 1998년 평화 협정 체결 전까지 IRA의 무장 투쟁이 계속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촌도 IRA에 의해 숨졌다.

지금도 스코틀랜드 프로 축구에서 셀틱과 레인저스가 맞붙는 ‘올드 펌 더비’가 열리기 전 양측 팬들은 과거 경기를 응원하다 숨진 팬들의 시신을 화장한 재를 경기장에 뿌리며 필승을 다짐한다. “나치보다 너희가 더 싫다”는 응원가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의 기성용과 차두리가 뛰고 있는 셀틱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만든 팀. 반면 레인저스는 셀틱에 맞서기 위해 영국인들이 만든 팀이다.

‘슬픈 아일랜드’ 등을 쓴 서울대 박지향 교수(영국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여왕의 방문으로 불편했던 관계가 당장 봉합이 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서로가 갖고 있는 오래된 악감정을 씻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특히 여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유감을 표현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양국 관계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