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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스티븐 클라크]佛선 성범죄가 속도위반 딱지 수준?

입력 | 2011-05-20 03:00:00


스티븐 클라크 뉴욕타임스 기고 파리에서 활동하는 영국 소설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체포된 일요일(15일) 이후 미국에서 그의 성범죄 혐의와 관련한 사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 최고 지도층 중의 한 사람이 잡범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비키니 입은 영국 여왕의 사진을 보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지도층은 단지 존경받는 동료 인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누구라도 스트로스칸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역자 주-한마디로 운이 좋지 않았다는 뜻)

똑같은 일이 파리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공공연하게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일을 당한 여자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었을 것이다. ‘내가 당한 일을 입 밖에 내면 직업을 잃게 되지 않을까, 영주권이라도 박탈당하지 않을까(역자 주-객실청소부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다. 시민권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고 말이다.

사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유혹’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자기보다 어리거나 (성)경험이 없는 사람과 관계를 갖는 데 능한 ‘상습적인 유혹자(serial seducers)’들로 알려져 있다. ‘쇼 라팽(chauds lapins·성적인 즐거움에 집착하는 남자라는 뜻의 프랑스 조어)’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95∼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냈던 알랭 쥐페는 2004년 공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판사는 그에게 “국민의 신뢰를 배신했다”고 했다. 이 일로 그는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화려하게 부활해) 오늘날 외교장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1995∼2007년 재임)도 성 스캔들에 연루되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스트로스칸의 모습을 보면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떠올렸다.(역자 주-폴란스키 감독은 1977년 미국에서 13세 소녀 모델을 성폭행한 혐의로 42일간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를 받다가 가석방된 뒤 프랑스로 달아났다. 그러다 2009년 9월 취리히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에 입국했다가 취리히 공항에서 체포됐다. 4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지만 전자 팔찌를 착용하고 스위스 별장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 지난해 7월 ‘폴란스키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겠다’는 스위스 법무부의 결정에 따라 파리로 돌아갔다) 2009년 그가 스위스에서 붙잡혔을 때 미국 당국은 소환을 요청했지만 프랑스 정치인들과 문화 관계자들은 그를 방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술 더 떠) 지난해 2월 폴란스키 감독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유령 작가(The Ghost Writer)’라는 작품으로 은곰상을 수상하자 르몽드는 “그가 돌아왔다”며 가족처럼 반겼다. 마치 폴란스키의 (성)범죄가 속도위반 딱지 떼이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이런 모든 상황은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트로스칸이 유죄를 선고받고 고통의 시간을 보낼지라도 그는 언젠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서전을 쓸 것이고(아마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모른다) 장관 자리에도 오르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남녀평등부 장관(minister of gender equality)’쯤이 아닐까.

스티븐 클라크 뉴욕타임스 기고 파리에서 활동하는 영국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