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이야기/애너 레너드 지음·김승진 옮김/500쪽·1만6000원·김영사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전 환경대학원장
이것은 우리가 티셔츠로 이미 가득 찬 서랍장에 티셔츠 한 장을 더 사 넣기 전에 잠시 멈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면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하면서 치르는 대가를 살펴보자. 티셔츠 한 장에 필요한 면화를 얻는 데 물 970L가 들어가고, 티셔츠의 흰색을 내기 위해 쓰인 표백제는 염소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내며, 이것이 폐수에 섞여 흘러들어가 지구의 전체 먹이사슬을 타고 마침내 우리 식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더 크고 새로운 물건을 많이 소유할수록 생태계는 더 파괴되고, 누군가는 저임금의 시간외노동을 강요받으며, 각종 폐기물과 독소는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 인간과 경제, 환경의 연결고리가 조목조목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경악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경제활동은 지속적인 물질의 흐름을 기반으로 한다. 해마다 엄청난 양의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각종 유·무형의 폐기물을 대자연에 다시 버리게 된다. 지구는 각종 자원을 공급해주는 기능뿐만 아니라 인간이 버린 각종 폐기물을 받아들이고 처리해주는 쓰레기통의 기능도 수행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인간의 경제활동이 지구에 이중의 충격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자원의 채취 단계에서 영향을 미치고, 폐기물의 배출 단계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자연자원의 채취에서부터 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그리고 폐기되기까지의 물질 흐름을 바탕으로 경제와 환경의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을 경제학에서는 물질수지분석이라고 한다.
채취 단계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는 숲의 파괴 문제다. 숲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주는데, 처방의약품의 4분의 1을 열대우림에서 채취함에도 얄팍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 열대우림이 계속 파괴되고 있다. 책은 물 부족 문제도 얘기하고 있는데, 특히 물 관리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눈길을 끈다. 광물자원의 채취가 단순히 자원 고갈 문제를 떠나 후진국 독재정권의 엄청난 인권침해와 결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테러조직과 결부되어 있다는 얘기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알루미늄캔과 PVC의 해악을 듣고 나면 이 물건들의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소비 단계 과정에서 나온 주장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높은 소득 수준 덕분에 오늘날 선진국 국민(특히 미국인)의 소비 수준이 극적으로 높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행복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자원 고갈 문제와 환경 파괴 문제만 발생시켰다는 내용이다. 끝없이 확장되는 경제의 미친 듯한 속도를 계속해서 따라간 결과가 어떤가를 생각하게 한다. 더 큰 집에 살고, 더 큰 차를 몰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풀타임으로 일해야 할 뿐이다.
현대는 상품 과잉의 시대다. 돈만 있으면 원하는 물건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티셔츠 한 장을 살 때도 고려해야 할 일이 있다. 재화를 소비할 때 그만큼의 폐기물이 다시 자연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영사 제공
우리는 수천 개의 상품을 보고 고를 수 있다. 과연 가장 싸고,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한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까? 이 구매나 이 행동이 환경과 노동자와 기후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공동체 일원으로서 더 넓게 생각할 수 없을까? “내가 개인 소비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를 묻지 말고, “우리가 공동체와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완전히 고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를 물어보자. TV 보고 쇼핑하는 시간을 줄이고, 공동체를 만들고 시민사회의 일에 참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면, 세상은 더 나아지고 우리에게 더 큰 충족감과 재미를 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