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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윤상호]反美정서 걱정? 철저한 진상규명이 답이다

입력 | 2011-05-23 03:00:00


“또다시 반미(反美) 구호가 넘쳐나는 촛불시위가 재연될까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주한미군 고위 관계자는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9년 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악몽이 떠오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주한미군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립 의혹 파문이 2002년 이후 잠잠하던 한국인의 반미 정서에 불을 댕길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민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사태가 다시 벌어진다면 한미동맹은 회복하기 힘든 국면을 맞을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20일 “모든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발굴 작업이 필요하면 한국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참관을 허용하는 등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강조하고, 22일 한미 공동조사에 전격 합의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일각에선 “2002년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기우(杞憂)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미관계에 치명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곳곳이 ‘지뢰밭’이라는 경고가 적지 않다.

만약 고엽제의 대량 매립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책임자 처벌과 오염 치유, 주민 배상 문제를 놓고 한미 간에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오염 치유는 주한미군이 책임져야 하지만, 치유 수준을 놓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30년 전 사건의 책임자 규명과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0년 서울 용산 기지에서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미국인 군무원 앨버트 맥팔렌드 씨가 2003년 한국 법정에서 실형(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례를 빼곤 환경오염 문제로 미국인이 처벌을 받은 전례는 거의 없다.

나아가 197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에서 사용하고 남은 다량의 고엽제가 한국에 들어와 다른 미군기지로도 옮겨졌다는 증언까지 나와 이에 대한 진상규명 여론이 거세질 경우 ‘고엽제 파문’은 전체 미군기지로 확산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이번 사태를 한미관계의 중대 위기로 인식하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특히 주한미군은 9년 전 여중생 사건 때처럼 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며 책임자 처벌 없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사태를 키웠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미관계가 다시 금이 가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