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안구기증에 감동… 의료봉사 눈떴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환자를 돌보는 의사. 수술실에서 그들은 생명윤리와 의료수칙에 충실해야 한다. 흰 가운을 벗고 나서야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 의사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와 진료 이야기를 듣는 ‘내 생애 최고의 수술’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회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이식 수술을 집도한 주천기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을 만났다.》
서울성모병원 안센터 입구에 걸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친필 액자. 이 병원의 주천기 안센터장은 늘 앞만 보고 달렸고, 나눔이란 여유가 있을 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구를 기증한 추기경의 수술을 맡은 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서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주천기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55)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2009년 2월 16일. 그날 수술대에는 방금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이 누워 있었다. 분초를 다투는 수술에서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메스를 잡은 주 교수의 손이 여느 때처럼 빨리 움직였다.
○ 장기 기증 서약 못 지킬 뻔
김 추기경은 안과 진료를 담당해온 주 교수에게 “안구 기증을 해야 하니 눈을 잘 관리해 달라”고 늘 얘기해 왔다. 김 추기경은 1990년 이미 장기 기증 서약을 한 바 있다. 안구 적출은 했지만 과거 백내장 수술을 받은 데다 노안이라 이식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섰다. 복도에 줄 서 있는 기자들도 떠올랐다.
“사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이 수술 때보다 더 떨렸습니다. 이식이 불가능하면 연구용으로 기증합니다. 김 추기경을 본받아 장기 기증 서약자가 늘어나는 상태에서 만약 적출만 하고 이식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지…. 이런 분위기가 식지 않을까, 시신만 훼손했다고 천주교 신자들이 반발하지는 않을까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릅니다.”
주 교수는 검사 결과가 담긴 서류를 받자 허겁지겁 봉투를 뜯었다. “휴.”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바로 이식을 받을 대상자 선정에 들어갔고 다음 날 두 명의 환자가 새 빛을 얻었다.
주 교수는 김 추기경 수술 이전과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김 추기경이 돌아가신 뒤 명동성당 앞에는 40만 명의 추모객이 줄을 섰다. 평생 보통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지도자였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김 추기경이 떠나며 남긴 것은 묵주 1개, 안구 2개뿐이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죽고 나면 덧없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을까. 제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주 교수는 서울시내 최고 병원에서 안센터장을 맡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다. 2008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총리상, 2010년 대한의사협회 한미자랑스러운의사상을 차례로 수상했다. 가히 안과 분야의 1인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다. 목표로 했던 고등학교, 대학에 가지 못했다. 서울본원이 아닌 지방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1994년 2년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대기발령 상태로 지낸 적도 있다. 주 교수는 “늘 앞만 보고 달려왔다. 1등이 아니었기에 1등을 해야 한다는 욕심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 수술 이후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그런 그가 2009년 11월 케냐 나이로비로 향한다. 꼬박 18시간 비행기를 탔다.
○ 세상을 밝히는 의사로 거듭나기
국제구호단체인 ‘월드쉐어’로부터 어린이 실명 예방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제안받았다. 주 교수는 첫 질문이 끝나자마자 선뜻 승낙했다. 김 추기경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세상을 밝히는 의사가 되라고 당부하셨어요. 좋은 시설에서 수술하고 좋은 환경에서 가르치는 것만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고 할 수 없잖아요.”
케냐에서는 그나마 시설이 좋다는 ‘케리초병원’으로 갔다. 그래도 한국의 1960, 70년대와 비슷했다. 이곳에서 선천성 백내장을 앓는 케냐 아이들 11명을 수술했다. 국내에서는 고등학생까지 전신마취를 한다. 케냐에서는 일곱 살보다 어린 아이는 전신마취, 그 이상 아이는 부분마취를 한다. 아이들이 고통을 참을 수 있을지 안타까움이 앞섰다. 수술 기구는 알코올을 바른 뒤 불을 붙여 소독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수술 도중 전등이 꺼지기도 수차례.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며칠 뒤 아이들은 가족들 앞에서 붕대를 풀었다. “하늘이 파래요.” “앞에 계신 분이 엄마 맞아요?”
모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주 교수도 아이들을 한 명씩 꼭 안아 주었다.
주 교수는 해외 의료봉사 이후 저개발국 의사 연수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케냐에서 수술을 보조했던 의사는 6개월간 한국에 와서 연수를 받았다.
“지금도 안센터 입구에는 김 추기경이 직접 쓴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액자를 볼 때마다 세상을 밝히는 의사가 되라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가슴에 다시 새기곤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액자를 찬찬히 바라보니 안경 뒤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주 교수의 눈이 떠오른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