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이고운 leegoun@donga.com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 J 군(17)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다 교사에게 적발됐다. J 군이 또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교사는 “한 번 더 휴대전화를 만지면 벌점을 주겠다”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J 군은 휴대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교사는 벌점 2점을 준 뒤 “지금 성찰교실로 가라”고 했다.
성찰교실로 간 J 군. 상담교사는 J 군에게 “5분 동안 자기행동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후 상담교사는 ‘수업시간에 왜 문자메시지를 보냈는지’ ‘선생님에게 서운한 점은 무엇인지’를 두고 10여 분간 J 군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상담교사는 “우리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까?”라며 역할극을 제안했다. 상담교사와 J 군은 서로 역할을 바꾸어 일종의 ‘연극’을 했다. 상담교사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시늉을 하자 J 군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상담교사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휴대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J 군은 자기행동이행계획서에 ‘선생님 입장이 돼 내가 했던 장면을 지켜보니 나 역시도 화가 났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찾아가 죄송하다고 말해야겠다’고 적었다.
성찰교실의 성격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문제아들만 가는 곳’이란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키고 있는 학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사진은 성찰교실에서 직업적성검사, 성격유형검사, 진로상담은 물론 시간관리법, 암기법 등 각종 학습법 상담을 병행해 상위권 학생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서울 삼성고의 성찰교실.
이 학교 생활지도부장교사는 “상습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의 경우 흡연행위 자체만을 추궁하는데 그칠 경우 다시 흡연할 공산이 크다”면서 “어떻게 하면 담배를 완전히 끊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금연프로그램을 학교 자체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적잖은 성찰교실에서 이렇게 전문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도 성찰교실을 ‘문제아들이 모이는 장소’로 인식하는 학생들은 많다.
서울의 한 여고 2학년 K 양은 ‘스승의 날’ 이벤트의 일환으로 교실에 깜짝 파티를 준비한 뒤 복도로 나가 선생님이 오는지를 살펴보던 중 때마침 교감선생님과 마주쳤다. 교감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복도를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K 양에게 벌점 2점을 주면서 “성찰교실에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성찰교실을 찾은 K 양은 자기행동이행계획서를 작성하고 ‘배움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하는 논어의 한 문구를 외우고 나서 교실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인식에 따라 성찰교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키려는 일부 학교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서울 삼성고는 성찰교실이 ‘상담실’의 역할을 병행토록 한다. 각종 진로상담, 학업상담, 고민상담, 교우관계상담 등을 성찰교실에서 진행하는 것. 올해 3월만 해도 성찰교실에 개별 상담을 신청한 학생 수는 9명에 머물렀지만, 상담프로그램을 본격 도입한 4월에는 신청자가 29명으로 크게 늘었다. 요즘엔 하루 5∼8명이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
성찰교실에 다녀온 사실 자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다만 성찰교실에 가야할 만큼 문제행위를 저질러 학교에서 ‘벌점’을 받을 경우 이 벌점내역은 학생부에 남아 대입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일부 학교는 성찰교실의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벌점을 없애줌으로써 학생부 기록으로 남지 않도록 해주기도 한다.
한편 몇몇 학교는 성찰교실을 운영하는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성찰교실을 만들긴 했지만, ‘성찰교실에 가는 학생은 상담을 받고 자기행동 이행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큰 지침 외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지도·상담방안 없이 그저 전문상담교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교가 나서 자체적으로 성찰교실 운영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경우 수업태도 불량, 무단결석, 흡연 등 학생의 문제행위가 갖는 심각성이 각기 다르더라도 모두 획일화된 프로세스에 따라 지도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