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강압적으로 눌러왔던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면서 물가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시기를 분산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지만 상반기 내내 쌓인 막대한 적자로 더 이상 공공요금 인상요구를 억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개인서비스 가격과 가공식품 가격까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농축수산물과 국제유가 상승으로 시작된 물가급등세가 공공요금과 개인서비스로 확산되는 고(高)물가 2단계로 진입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내달부터 공공요금 줄줄이 인상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억제는 이미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하는 공공요금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 서울시는 4년째 동결한 지하철 기본요금(900원)을 200~300원 올리고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과 경기, 부산, 대전 울산 등 주요 지자체들도 지하철과 시내버스 요금을 10% 이상 인상할 방침이다.
상하수도 요금 역시 최근 전주시가 7월부터 상수도와 하수도 요금을 각각 18.36%, 90.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대전도 7월부터 상수도 요금을 9.29%, 하수도 요금을 20~25% 인상할 예정이고 서울은 상수도요금을 최고 17%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메가톤급 악재는 전기요금 등 17종의 중앙공공요금. 특히 전기요금은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이 전력공급 및 투자보수 비용을 합한 원가의 86%에 불과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식경제부와 함께 전기요금 합리화를 위한 로드맵을 협의 중"이라며 "정부가 관리하는 중앙공공요금 가운데 11종에 대해 주무부처와 함께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은 원가 상승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을 16.2% 가량 인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7월 연료비에 전기요금을 연동하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현재 전기요금이 워낙 낮은 만큼 먼저 내년 말까지 원가 수준으로 요금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은 냉방으로 전기사용량이 늘어나는 7월 4~8%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도 물가 관리 차원에서 보류했던 공공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중앙과 지방을 합쳐 28종에 이르는 공공요금이 한꺼번에 인상되면 서민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공공요금별 인상 시기를 분산하고 단계적으로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23일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국제 원자재가격 등 인상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꺼번에 인상이 이뤄져 서민에게 부담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요금 동결에 따른 관련 기관의 경영상황 등을 살펴보고 하반기 공공요금 조정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요금이 인상되면 이미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개인서비스 요금 역시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개인서비스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3%로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상황이다.
이에 더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로 가격 인상추세가 수그러들었던 가공식품 물가도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달 70개 가공식품 가운데 가격이 오른 품목은 56개로 80%에 이른다.
이에 따라 하반기 안정될 것으로 예상됐던 물가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최악의 경우 소비자물가가 하반기에도 4%대 상승세를 이어가 올해 평균 4.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