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들의 性 판타지… ‘대물지상주의’ 역겨움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로 점철된 ‘옥보단 3D’에서 극중 남자 주인공 미양생은 성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사 하늘 제공
부부가 2만6000원의 관람료를 지불한 뒤 다소 상기된 얼굴로 3D 전용 안경을 낀 P 씨. 영화가 시작된 지 딱 15분 만에 P 씨의 기대는 펄펄 끓는 증오로 바뀌었다. 영화엔 스토리텔링이란 게 없어 보였다. 오로지 수없이 등장하는 이름 모를 여성들의 출렁이는 가슴들이 ‘주인공’ 자체였다. 가슴, 가슴, 가슴, 가슴, 또 가슴…. 평생 2초 이상 섹스를 해본 적 없는, 코 크고 느끼하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성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수탕나귀의 성기를 이식받는다는 내용. ‘대물’로 변신한 그는 수많은 여성을 성의 노예로 삼다가 결국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는 참회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물론 남자들의 ‘대물 지상주의’와 ‘정력 숭배’를 P 씨가 모르는 바 아니다. P 씨가 참지 못했던 건 영화를 시종 지배하고 있는 수컷들의 어리석은 성적 판타지였다. 영화 속 여성들에겐 도대체 인격이란 게, 심지어는 뇌란 게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처음엔 “안 돼요!” 하다가도 수컷들이 일단 작업(?)에 돌입하면 “노(No)”는 어느새 “예스(Yes)”로 변하며 자지러졌다. 기다란 성기를 왼쪽 허벅지에 칭칭 감은 남자 주인공은 “한 번에 10명과도 할 수 있지요. 으핫핫하” 하며 성기를 장검처럼 휘둘러대고, 뭇 여성들은 영혼이라도 내줄 것처럼 벌거벗고 그를 졸졸 쫓아다녔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 남자에게 처절하게 버림받았던 조강지처가 이 남자와 재회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났다. P 씨는 3D 전용 안경을 부서져라 내던지며 상영관을 나섰다. 1만 원이 넘는 관람료가 피처럼 아깝게 느껴졌다. 왠지 남편도 영화 속 놈들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에 남편과 잠자리를 하고픈 마음도 먼지처럼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조간신문을 편 P 씨는 1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62세 남자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P 씨의 내면은 암담했다. 아, 남자라는 것들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배웠든 안 배웠든, 젊었든 늙었든, 좌파든 우파든 하나같이 들이대기만 하는 한심한 족속일 뿐이란 말인가!
P 씨는 갑자기 과거 비디오방에서 옥보단 오리지널 버전을 함께 보면서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던 서클 오빠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땐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 보니 그 남자 역시 저질이었다는 사실을 P 씨는 18년 만에 알게 되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