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기자
하지만 김 씨가 이익을 보려면 이날 코스피200지수가 4% 이상 폭락해야만 했다. 수익이 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외(外)가격’에 베팅한 것이다. 결국 당일 실제 지수 하락폭은 이보다 작았고 김 씨는 폭탄을 터뜨렸지만 대박은 터뜨리지 못했다.
이 허황된 투자 사례는 김 씨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한탕 벌겠다는 꿈에 젖어 로또를 사듯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거래량 기준으로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3.3%로 기관투자가(30.4%)보다도 많다. 개인들이 하루에 거래하는 거래대금만도 20조 원을 웃돈다. 기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유럽 등 선진 금융시장과 영 딴판이다. 일본 파생상품 시장만 봐도 2009년 기준 개인 비중은 7.8%에 불과하다.
문제는 폭발물을 터뜨린 김 씨처럼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큰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외(外)가격에만 투자자금을 모두 베팅하는 개미투자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파생상품 가운데 하나인 주가워런트증권(ELW)을 보면 외가격 중에서도 손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극외가격’의 투자비중이 전체의 11%를 차지한다. 외가격 투자가 일반화되다 보니 대박을 노리다가 투자 자금을 몽땅 날리는 쪽박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파생상품 시장은 주식시장과 달리 지수가 올라도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조가 아니다. 한 쪽에서 수백 배 이익을 보면 다른 쪽에서는 수백 배 손실을 보는,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제로섬 게임’의 장이다. 이 때문에 시장 예측 능력이 떨어지는 개인은 정보가 빠른 기관에 치여 수익을 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정이 이런 데도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들에게 이런 점을 교육하기보다는 파생상품 수수료 수입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탕주의에 빠진 개미들을 탓하기에 앞서 개인들에게 파생상품의 구조와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고 투자 이후에도 사후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