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는 대지진에… BMW는 화산폭발에… 현대차는 협력사 파업에… 부품공급 차질
유성기업 파업 사태와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동일본 대지진, 중국 폭스콘 공장 폭발 사고….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네 가지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진행한 최적화된 일대일 부품공급 방식의 약점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글로벌 대형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일어난 이들 사건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수요에 맞춰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사활을 걸었다. 재고를 쌓아 두지 않고 필요한 때 부품을 공급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과 일원화된 부품 공급망 등은 이러한 시스템의 일환이었다. 부품 개발 단계부터 협업을 한 협력업체에 대부분의 물량을 의존하면 제조기업은 무엇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며 보안 유지도 쉽다.
그러나 천재지변이나 파업 등으로 부품업체의 납품이 중단되면서 완제품 생산도 못하게 되자 이런 비용절감이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비용보다 더 중요한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공급망을 비용절감이 아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유성 파업은 현대차에 예방주사
유성기업의 파업은 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부품공급 문제의 연장 선상에 있다. 개당 납품 원가가 1000원 수준인 피스톤링 물량의 70%를 유성기업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던 현대자동차그룹은 생산 차질로 약 216억 원(현대차 56억여 원, 기아차 160여억 원)의 피해를 봤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파업이 아니라 화재 등으로 생산 기반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며 “현대차가 세계 수위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려면 이번 기회를 계기로 부품 공급망의 리스크 관리를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아예 부품 구매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부품을 함께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일부 범용 부품은 공동으로 구입하고 있다.
강민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중요한 부품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여러 곳에서 납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효율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황금률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 화산재로 긴장하는 유럽 자동차 회사
24일(현지 시간) 아이슬란드 화산이 뿜어낸 화산재가 북유럽 상공을 뒤덮으면서 일부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자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했을 때 대부분의 비행기가 뜨지 못해 물류대란이 일어나면서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한 BMW와 아우디, 닛산, 혼다 등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비하면 큰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지진으로 인해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부품회사들이 피해를 보자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올해 모두 40만 대의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지진 때문에 일본에서 부품과 소재를 가져다 쓰는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생산 차질을 빚기는 마찬가지였다.
생산 차질의 원인에는 천재지변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일 발생한 폭스콘의 중국 청두(成都) 공장 폭발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대부분을 조립하고 있는 폭스콘의 사고로 인해 애플은 최대 280만 대의 아이패드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미국 정보기술(IT) 업계는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미 아이패드2의 물량이 달리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애플은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한두 개의 공장에 부품 생산이나 조립을 맡긴 글로벌 제조기업들의 공급 사슬망 전략을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