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물=높은 열 발생… 관내부 열소독”
발굴단원이 미라가 입고 있는 옷에서 세균 배양 실험을 하기 위해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고려대 김한겸 교수팀은 연구를 통해 한국미라는 무균 상태로 보관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세균이 어떻게 죽었느냐’는 미스터리였다. 서울대 신동훈 교수팀은 최근 실험을 통해 횟가루가 물, 산성토양과 섞여 열을 내는 화학반응 때문에 내부가 열로 소독됐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몽골 국경 인근 알타이 산맥에서 ‘얼음공주 미라’를 발굴한 세계적인 미라 전문가인 러시아 고고학자 몰로딘 박사는 한국미라를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한국미라는 전문가들에게도 ‘보기 드문’ 존재다. 미라는 전 세계에서 발견되지만 보통 사막이나 아주 추운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얼지도, 마르지도 않은 사람의 육체가 수백 년간 보관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한국미라가 썩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된 데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 산소 차단이 첫 번째 원인
고고학자들은 한국미라가 썩지 않은 원인을 무덤구조에서 찾는다. 한국미라는 조선시대에 발굴된 회곽묘(灰槨墓)에서만 발견된다. 회곽묘는 생석회를 관 주위에 부어 돌처럼 굳힌 구조다. 산소가 차단됐기 때문에 썩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산소가 없이도 살 수 있는 ‘혐기성 세균’이다. 이런 세균은 밀봉된 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하기 때문에 한 번 이상의 살균과정은 꼭 필요하다.
○ 관 내부 100도 이상 210분 지속
1년 이상 궁금증으로 남아 있던 이 의문에 실마리를 던진 것은 신동훈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다. 신 교수는 2010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미라 형성과정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25일 본지에 처음 밝혔다. 신 교수팀에 따르면 한국미라는 ‘열소독’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먼저 나무로 작은 관을 만들고, 그 안에 이산화탄소로 안락사시킨 실험용 흰쥐를 넣었다. 그리고 관 주변에 거푸집을 만들고, 조선시대 회곽묘에 쓰인 것과 똑같은 삼물(三物·생석회를 모래, 황토와 섞은 것)을 부었다. 삼물의 두께나 관의 크기는 실제 회곽묘 비율에 맞춰 정밀하게 축소했다. 관과 삼물에 온도계를 꽂아 열 번에 걸쳐 측정한 결과 삼물의 온도는 최대 섭씨 200도, 관 내부는 149도까지 올라갔다. 관 내부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간 시간도 최대 210분이나 됐다. 산성 토양에 염기성 물질인 석회를 넣고 물을 부으면 서로 섞이면서 높은 열을 내기 때문이다. 살균하기엔 충분한 시간과 온도다. 열소독을 거친 회곽묘 안에 들어있던 흰쥐를 13주가 지난 후 열어 보니 썩지 않았다.
신 교수는 “흰쥐의 시체를 해부해 보니 뇌나 간세포의 형태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며 “실제 회곽묘와는 크기나 보관기간에 차이가 있지만 석회가 물과 산성토양과 만나면서 발생한 열이 미라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 中 미라도 2100년간 썩지 않아
현지 취재 결과 중국의 밀봉 미라도 모두 한국미라와 같은 조건을 보였다. 후난 성 창사 시 박물관의 자랑거리인 마왕두이(馬王堆) 미라는 2100년간 썩지 않다가 1972년 발굴됐는데, 관 속에서 수은이 발견됐다. 후베이 성 징저우 시 인근에서 발견된 또 다른 미라도 ‘주사(朱砂)’라는 광물질이 나왔다. 두 가지 모두 살균력이 높은 물질이다. 마왕두이 미라 발굴에 참여한 가오즈시(高至喜·전 박물관장) 연구관은 “수은의 살균작용이 시신이 썩는 걸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고의로 방부처리를 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미라의 기원과 생성 원인은 과학동아 6월호 특집기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회곽묘(灰槨墓)::
조선 초기 등장한 무덤.시신이 나무뿌리나 벌레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관 주변에 횟가루를 부어 굳힌 구조.
::삼물(三物)::
시멘트 같은 건축 재료로 성벽 등을 만들 때 사용한다. 생석회, 모래, 황토를 2 대 1 대 1의 비율로 섞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