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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환영’ 말뿐인 혼저옵서예

입력 | 2011-05-27 14:12:17

제주도 관광 중국인 유치 인프라 태부족 … 중국어통역 안내사 겨우 36명뿐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 여행객들.

“아름다운 섬이긴 하지만 다시 올지는 모르겠네요.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한 것보다 영어, 중국어가 안 통해 답답했던 기억이 더 많거든요.”

따사로운 햇볕이 온몸을 감싸고 상쾌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던 5월 둘째 주말.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인 천제연폭포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중국인 양자엽(28) 씨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할머니, 부모님과 여행 중인 양씨는 “서귀포의 숙소로 가야 하는데 이 버스정류장에는 영어 표지판조차 없다. 버스는 물어볼 새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며 서툰 영어를 섞어 중국어로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가장 돈 많이 쓴 ‘큰손’ 찬밥 대우


버스정류장에는 양씨가 가고자 하는 ‘서귀포’행 버스가 10분에 1대씩 왔지만 양씨 일행은 1시간째 버스를 타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는 한국어 표지판과 시간표가 친절히 붙어 있었지만, 영어나 중국어 표지판은 없었다.

간혹 지나가는 택시는 멈추는 듯하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양씨 일행을 태우지 않고 다시 달렸다. 그는 “내가 중국인이라서 무시하고 택시가 안 서는 것 아니냐”며 길길이 뛰었다. 기자가 길 중간까지 나가서 겨우 택시를 잡고 행선지를 말한 후에야 양씨 일행은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양씨는 기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지만,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중국인이 여행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2010년 5000만 명의 중국인이 해외를 관광했다. 세계관광기구는 2020년 중국인 해외 관광객 수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관광 소비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중국인 관광객 1명이 한국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평균 1558달러로 일본인 관광객(1073달러)보다 1.5배 가까이 많다. “관광업을 육성하려면 중국인 관광객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으로선 ‘중국 관광객 잡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체 방한 관광객 812만 명 가운데 중국인은 176만 명으로 21.6%에 이른다. 이는 일본인 관광객(279만 명, 34.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만큼 그들의 만족도 또한 높아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0년 조사한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관광 실태’에 따르면, ‘한국 여행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보통’이라는 답이 39.6%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약간 불만족스럽다’(21.6%)가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 상당수가 한국 여행에 전반적으로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안수원(42) 씨는 “중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국 여행’ 등 키워드를 치면 한국 여행에서 느낀 부정적인 얘기가 쭉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 이미지까지 안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은 여전히 인프라가 미비하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 81.7%가 ‘선호한다’고 응답한 제주도는 중국인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거의 안 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원대 관광경영학과 모 교수는 “제주도는 지리적 이점이 있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의 입맛에 맞는 여행 코스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중국인 전용 휴양지’로 자리매김한다면 한국 관광산업도 크게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에 비해 노력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인이 제주도를 관광할 때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언어 문제다. 사단법인 창의연구소가 2010년 11월 한 달간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40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7.3%만이 ‘안내표지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일본 아닌 중국으로 무게중심 옮겨야

언어를 모르면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어렵다. 관광객이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이후 제주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주로 이용하는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도 영어, 중국어 표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러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국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에 중국인 관광객은 까막눈이 돼버린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리무진버스(600번)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버스가 출발할 때 “이 버스에 탄 걸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하기 때문. 하지만 각 정류장은 한글과 영어로만 소개해 중국인 관광객이 버스에서 내릴 때 어려움을 겪었다.

직접 운전을 하는 경우에도 외국어 표지판을 찾기 힘들었다. 천제연폭포, 섭지코지 등 유명 관광지 초입에는 영어와 한국어 병용 표지판이 있을 뿐, 중국어나 한자로 표기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어 표기마저 없는 곳도 태반이었다.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난 중국인 리위강 씨는 “외국인이 차를 렌트하거나 택시를 대절하지 않고 대중교통만으로 제주도를 여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몇 번 시도해본 후 버스 노선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택시로만 움직여 예상보다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중국인 관광객은 말이 통하는 택시기사를 찾기도 어렵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갖고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관광통역 안내사는 264명. 그중 대부분(226명)은 일본어 가능자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36명에 불과하다.

제주도청 측은 “도청 나름대로 중국 여행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도민 가운데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단기간 실무교육을 시켜 조만간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제주 열풍의 주역인 ‘올레길’은 중국인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많이 한 편이다. 올레꾼이 가장 많이 찾는 ‘7코스’ 시작 지점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황모 씨는 올레길 공식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뽑은 중국어 안내글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파란색 끈을 보고 가면 된다”며 되레 기자에게 올레길의 원리를 설명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관계자는 “아직 ‘올레꾼’ 가운데 외국인이 많진 않지만 앞으로도 외국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외국인 유치 행사를 열어 ‘세계인의 올레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문가는 “제주도와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금까지는 제주도 관광산업이 일본 위주였는데, 하루빨리 무게중심이 중국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 주간동아  7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