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딜레마/김명자 지음/432쪽·2만 원·사이언스북스
전 환경부 장관으로 2009년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장’으로 내정(위원회는 아직 출범하지 않음)된 바 있는 저자가 인류의 고심거리로 떠오른 원자력 이용 문제를 과학사적 문화사적 배경과 함께 짚어가며 원자력 이용의 미래를 그렸다.
○ 원자폭탄의 개조로 탄생한 원자력발전
원자력에 대해 일반인이 가지는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붕괴 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원전 반대 여론이 비등한다. 저자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이런 공포에 대해 “인류 사회가 원자력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의 이미지는 사회적 유전자로 전승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의미다.
저자는 “원자폭탄이 먼저 나오지 않았다면 원자로는 원자폭탄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효율성과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모델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원자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 관계를 밝힌 방정식(E=mc²)을 발견했던 이상, 과학자들은 언젠가 원자핵의 극미한 질량 변화를 천문학적 에너지로 바꾸는 일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방사능의 ‘원초적’ 공포
올해 4월 21일 지구의 날을 기념해 국내 환경단체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핵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류에게 원자력의 이미지는 공포 일색으로 각인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전쟁 통신원으로 일한 존 허시가 1946년 8월 발간한 ‘히로시마’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고등학생의 필독서가 되면서 원자폭탄의 공포를 증폭시켰다. 피폭의 참상을 담은 허시의 책은 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방사성 물질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는 것이다. 원폭에 대한 공포는 이어 ‘그날이 오면’ 같은 수많은 영화로 재현됐다.
1969년 대도시 뉴욕 인근에서 일어난 스리마일 섬 사고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인류에게 다시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
○ ‘징검다리 에너지’로서의 원자력
가압경수로 6기가 가동되고 있는 울진 원자력발전소. 국내 원자력발전은 총전력생산량의 34.2%를 차지한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전체 발전량 중에서 원자력은 계절 변화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반면 천연가스와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는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높아질 때만 투입된다. 그만큼 원자력은 온실가스 감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신재생에너지로 현대사회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가 아직은 벅찬 상태다.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로 가기 전까지 기존 산업 구조와 도시 인프라를 지탱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에너지’로 원자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아울러 한계와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원자력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원자력을 다루는 사회적 합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사업 추진 방식이었던 결정-발표-옹호 방식을 버리고, 시민 사회와 정부, 원자력 사업자가 함께 결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데 책의 방점이 찍힌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