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논설위원
23년 전에는 본격적인 수사권 독립 방안을 놓고 대립했지만 지금은 수사권의 극히 일부인 수사 개시권을 놓고 검찰과 경찰이 맞서 있다. 경찰이 수사를 개시해도 검찰은 사법 단계마다 수사 지휘권과 종결권, 영장 청구권, 기소권으로 경찰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 개시권을 법으로 명시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고 돼있다. 검사의 지휘 없이는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형사 사건의 97∼98%를 담당하는 경찰은 실제로 수사 개시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경찰은 “현실에 맞게 법을 고치자”고 주장한다.
수사권 독립은 한국 경찰의 최대 숙원이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때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됐을 정도로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적 금기사항이었다. 경찰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개헌 정국 때 다시 수사권 독립을 제기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당선되면 잊어버리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일부 사건의 수사권을 경찰에 부여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지금까지 진전이 없다.
국회는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과 검사들의 각종 스캔들을 계기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시켰다. 사개특위는 검사 비리가 과도한 권한이 검찰에 집중된 탓이라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인정하기로 4월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특위 분위기는 경찰이 내사 단계부터 검사에게 보고하도록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반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검찰의 관계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8년 맥아더 장군에 의해 경찰 수사권 독립이 이뤄졌다. 이후 일반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를 전담하면서 거악(巨惡) 척결에 수사력을 집중해 국민적 신뢰를 얻게 됐다. 검찰과 경찰의 요즘 싸움에는 공정한 수사 보장과 국민 권익을 위한 고려가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검경의 권한을 둘러싼 다툼 같아 국민의 눈에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