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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게이트]정책실패 논란 前금융수장들 “당시엔 합리적 정책” 강변

입력 | 2011-06-02 03:00:00

이달 추진 저축銀 국정조사 ‘책임 가리기’ 본격화될 듯




6월 임시국회에서 추진될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초래한 정책 실패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당시 저축은행 정책을 입안한 전직 금융당국 수장(首長)들의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재임 중 ‘최선’이라며 내놓았던 각종 저축은행 부양책들이 저축은행의 방만, 부실 경영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저축은행 게이트’로 비화되는 단초가 됐다는 관측이 많다. 또 부실 저축은행의 ‘구명(救命) 로비’에 이 수장들의 영향력이 동원됐을 것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이를 둘러싼 진실 규명이 국정조사의 핵심 현안으로 떠올랐다.

○ 책임지지 않는 금융권력

정치권과 금융권은 4월 20, 21일 국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 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금융당국 수장들이 모두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증인으로 불려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청문회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저축은행 부실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은 저축은행 부실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 만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감독을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김 전 원장은 올 3월 감사원이 감독부실 책임을 물어 금감원에 기관주의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금감원이) 검사하고 제재하고 많이 했는데, 이젠 좀 서운하게 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부산저축은행그룹으로부터 금감원 검사 무마 대가로 1억7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접촉했던 인물로 확인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에게도 저축은행 문제는 재임 기간 제대로 손대지 못한 찜찜한 정책 현안이었다. 진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퇴임을 앞두고 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본격적으로 다가서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저축은행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지 못한 이유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 “당시로서는 합리적 정책”

저축은행 정책라인의 정점에 서 있던 전직 금융당국 수장들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저축은행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심어주고, 대형화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을 받는 예금 보호한도 상향 조정 조치에 대해 진념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그런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大亂) 당시 적잖은 저축은행을 경영난에 빠뜨리게 한 대책으로 평가받는 소액대출 활성화에 대해서도 “서민금융의 길이 막혀 있어 접근성을 늘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상호신용금고에서 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한 조치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국회에서 의결해준 것이다. 저는 단지 상호 변경이 필요하다는 원칙만 제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8·8클럽 제도를 도입한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은 “해당 클럽에 해당하는 곳은 117개 저축은행 중 7곳뿐으로 당시로는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론과 관련해 “정책을 사후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지만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진행된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심각성과 파급력을 감안하면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 “인사권 포기가 부실의 결정타”

금융당국 수장들이 10여 년간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것도 국정조사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옛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통합 출범한 1999년 1월 이후 부원장들이 인사권을 쥐고 상대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칸막이 인사’를 해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신사협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신용관리기금 출신들과 섞이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신용관리기금 출신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것은 조직 안에서조차 ‘서자’ 취급을 하며 홀대했던 금감원의 인사 관행과도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최근 부서장의 85%, 팀장급의 71%를 교체하면서 철옹성 같던 칸막이 인사제도를 허물었다. 특히 저축은행 검사 인력은 96%를 바꿨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역대 금감원장이 칸막이 인사를 용인해주는 방식으로 인사권을 ‘포기’하면서 저축은행 업무만 20년 가까이 한 직원들이 생겼다”며 “결국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비리와 부패의 사슬구조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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