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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상회담 제안 비밀접촉 공개]3시간 넘게 침묵하던 정부 “일일이 대응 않겠다”

입력 | 2011-06-02 03:00:00

“맞대응하면 제2, 제3 소설 쓸것”… “北 복잡한 사정 있는 듯” 분석도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북한이 1일 전격 공개하자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3시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관련 보도가 나온 뒤 당혹감에 휩싸인 듯 오후 늦게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천영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김영호 통일비서관은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았고 이후 휴대전화가 다시 켜진 뒤에도 한동안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 당사자로 거명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과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 역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이들 당국자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의 의도와 대응책을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시간 회의 결과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통일부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북 간 물밑 접촉을 비공개로 진행해온 외교적 관례를 깬 북한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에 청와대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외교관례를 어겼다고, 한국마저 어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첫 보도 후 3시간 40분이 지난 이날 오후 6시 40분 통일부는 천해성 대변인 명의로 북측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천 대변인은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북측 주장의 진위에 대해 확인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지고 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며 원칙론을 되풀이했다. 정부가 이처럼 ‘로 키’로 대응키로 한 데는 적극 대응하면 할수록 북한의 반박이 되풀이돼 ‘제2, 제3의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정리된 입장이 공식 발표된 이후에야 당국자들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돈 봉투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내용까지 거론하면서 이렇게 ‘막가파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며 “주장의 상당 부분이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돼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디서 몇 차례 정상회담을 하자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식으로 제안한 바는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렇게 전례 없이 물밑 접촉 내용을 공개한 것은 뭔가 내부의 권력투쟁 등 복잡한 사정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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