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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상회담 제안 비밀접촉 공개]‘MB 베를린 제안’ 맞춰 첫 접촉… 개성-베이징서 밀고 당기기

입력 | 2011-06-02 03:00:00

北 공개내용 토대로 재구성한 비밀접촉 전말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1일 남북 간 비밀접촉 공개에 대해 정부는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이라며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확인은 거부했다. 비록 북한의 일방적 주장이지만 통일부의 설명과 그동안의 정황을 볼 때 비밀접촉 사실은 확인된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4월부터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더 거론하지 않겠으니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열자”고 요청해 왔다고 주장했다. 북측도 4월 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나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전해 왔다. 정부 소식통은 “비밀접촉 제의 자체는 북한이 먼저 했다”고 말했다.

첫 비밀접촉은 5월 9일 북한 개성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 정부 들어 물밑접촉 장소로 자주 활용된 곳이다. 북측은 이 접촉에서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정황을 설명하며 “당장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밝혔다.

9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날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뜻을 밝힌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는 9일 밤늦은 때였다. 남측은 사전에 이런 의사를 설명하기 위해 이 대통령의 선언을 몇 시간 앞두고 급히 북한을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 지역 방문자는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과 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이 비밀접촉 당사자로 거론한 김 실장과 홍 국장,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 가운데 김 비서관은 그 시간 이 대통령을 수행해 베를린에 있었다. 북측의 카운터파트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라인의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일 가능성이 높지만 국방위원회 인사가 나섰을 수도 있다.

이 접촉에서 남측 당국자는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을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비밀접촉에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 대한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뜻을 일관되게 전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천안함, 연평도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지혜롭게 넘어야 할 산’이라며 ‘북한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라도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자”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정상회담을 위해 남측이 제시한 조건의 수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접촉에서 ‘명확한 사과’를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이미 북한의 ‘사과’ 대신 ‘책임 있는 조치’를 강조해 왔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도 4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의 직접 사과가 아닌 다른 방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모색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접촉에서 북한은 “사과할 수 없다. 사과를 전제로 정상회담을 논의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1차 접촉은 결렬됐다. ‘베를린 제안’ 이틀 뒤인 11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을 ‘도발적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측이 ‘베를린 제안’ 전에 북측에 정상회담을 제안한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어 지난달 14일경 남측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접촉을 갖고 천안함, 연평도 문제 해결 이후 가능한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나리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달 18일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이 북한에 전달됐다”고 확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이 접촉에서 3차례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베이징에서 김천식 실장이 북측과 접촉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접촉에는 김태효 비서관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일정 가운데 첫 방문지인 독일까지만 수행하고 이 대통령이 11일 덴마크를 방문하기 전 귀국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이 ‘최소한 두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시해 달라.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논의하자. 정상회담 개최를 빨리 추진하자’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남측은 이 접촉에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 대한 북한의 조치를 ‘유감 표명’ 수준까지 낮춘 것으로 보인다.

이 접촉 이후 정부는 북한의 반응을 기다렸다. 정부 당국자들은 조평통의 비난에 대해 “이 대통령의 초청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돌연 한국 정부와 “더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며 거족적인 전면공세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야 정부는 남북간 비밀접촉이 결렬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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