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 미스터리’ 열쇠 찾으러 가볼까
2009년 익산 미륵사터 서탑 1층 해체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외호, 사리내호, 사리, 구슬(왼쪽부터). 작은 사진은 사리호, 사리봉안기 등의 출토 모습.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사리봉안기가 발굴된 지 2년 4개월여. 무왕의 시대와 선화공주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린다. 충남 부여군의 국립부여박물관이 7월 24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서동의 꿈, 미륵의 통일-백제 무왕’. 쇠락해가던 사비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백제의 30대 무왕의 업적과 삶을 조명해보는 자리다.
미륵사터 서탑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안기. 이 탑 발원의 주체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씨 집안 출신의 왕후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다양한 각도에서 무왕시대를 살펴보지만 역시 세인의 관심사는 선화공주와 관련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선화공주의 실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다음은 부여박물관 박경은 학예연구사의 설명. “사택씨 왕후의 존재로 인해 선화공주의 존재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선화공주는 실존 인물이다.” “당시 국제 정세로 보아 무왕이 적국인 신라의 선화공주와 정략적으로 결혼한 것이다.” “선화공주와 사택씨의 딸 모두 무왕의 왕후였다.” “미륵사 발굴 결과 중원(中院)이 서원(西院)보다 일찍 조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원이 선화공주의 발원으로 먼저 건립되고 이후 639년에 사택씨 왕후의 발원에 의해 서원이 건립됐을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설득력이 높지만 정답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논의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 결정적인 유물이 발굴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화공주는 더더욱 신비로운 존재다. 이번 전시가 매력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041-833-8562, 3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