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컬렉션이 열리는 도시들이다. 각각 도시의 느낌들만큼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컬렉션도 도시와 쌍둥이라고 할 만큼 닮아 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흐르는 센 강과 그 양쪽 강변을 병풍처럼 장식한 우아한 석조건물들은 파리컬렉션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중심으로 도시를 찬양하는 기념비처럼 서 있는 고층빌딩들은 뉴욕컬렉션의 건축적이고 미니멀한 시크함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이 도시들이 어느 한순간에 그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적 자산에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현대적인 발상을 결합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아일보 DB
그 후로 4년. 한강의 세빛둥둥섬에서 펜디 패션쇼가 진행됐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에게도 글로벌한 브랜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글로벌한 패션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디자이너와 패션제품도 더 대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이 역사의 흥망성쇠의 주무대였던 쯔진청(紫禁城)을 이탈리아 오페라 ‘투란도트’의 배경으로, 껄끄러운 과거를 가진 일본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패션쇼장으로 사용하게 해 준 것은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더 큰 비전을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유용(有用)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