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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서울, 글로벌 패션도시로 거듭나기

입력 | 2011-06-03 03:00:00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

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컬렉션이 열리는 도시들이다. 각각 도시의 느낌들만큼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컬렉션도 도시와 쌍둥이라고 할 만큼 닮아 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흐르는 센 강과 그 양쪽 강변을 병풍처럼 장식한 우아한 석조건물들은 파리컬렉션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중심으로 도시를 찬양하는 기념비처럼 서 있는 고층빌딩들은 뉴욕컬렉션의 건축적이고 미니멀한 시크함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이 도시들이 어느 한순간에 그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적 자산에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현대적인 발상을 결합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울도 여느 도시 못지않은 유구한 역사와 함께 곳곳에 이야기가 넘치는 역사적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프라다가 경희궁에 4가지 형태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사진)라는 건축물을 설치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상업적 마케팅의 수단이다’, ‘궁궐 안에 철골 건축물이 어울리겠느냐’ 등 논란이 많았지만 전통과 현대의 연결고리가 되는 현대 서울의 모습을 전 세계에, 그것도 세련된 패션도시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동아일보 DB

샤넬은 ‘무빙아트’라 하여 해체·조립이 가능한 미래적인 전시공간을, 샤넬을 테마로 한 아트작업으로 채워 넣어 홍콩과 뉴욕에서 진행했으며 2007년 펜디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패션쇼의 런웨이로 만들어 과거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걸작품 중 하나가 현대에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 후로 4년. 한강의 세빛둥둥섬에서 펜디 패션쇼가 진행됐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에게도 글로벌한 브랜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글로벌한 패션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디자이너와 패션제품도 더 대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이 역사의 흥망성쇠의 주무대였던 쯔진청(紫禁城)을 이탈리아 오페라 ‘투란도트’의 배경으로, 껄끄러운 과거를 가진 일본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패션쇼장으로 사용하게 해 준 것은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더 큰 비전을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유용(有用)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