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따라 담뱃값 자동 인상해 흡연율 낮춰
《 세계 각국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금연 정책을 내놓고 있다. 성인 남성 흡연율이 40%에 육박하는 한국도 금연 정책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담뱃세’를 대폭 인상해 흡연자를 압박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담뱃세를 물가와 연동하자는 법안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쓰면 서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을 시행하는 호주의 실태를 현지 취재했다. 이를 토대로 효과적인 금연 정책 및 담뱃값에 관한 논쟁과 선진국의 사례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호주에서는 금연을 위해 흡연의 폐해를 강조한 시각적인 금연 캠페인과 세금을 활용한 가격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담뱃값이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호주에서는 매년 2차례 소비자물가지수와 연동해 담배 세금을 올린다. 한국 성인 흡연율이 26% 정도인 데 비해 호주의 흡연율은 17%이다. 사진은 시드니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의 금연 광고(왼쪽)와 담뱃갑. 시드니=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지난달 27일 패디스 마켓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기념품 담배 케이스와 라이터를 파는 상점에서 발길을 멈췄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법에 따라 18세 이상인 성인에게만 라이터를 판매한다’는 안내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1개에 4호주달러(약 4800원)짜리 양철 담배 케이스에는 마치 담배처럼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상점 직원은 “모든 담배 케이스에 흡연 경고문이 적혀 있다”고 말했다.
○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
이런 금연 캠페인은 연방 정부뿐만 아니라 주 정부 단위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금연 광고 캠페인을 주관하는 곳은 정부 설립 기관인 뉴사우스웨일스 암연구소다. 광고 캠페인 책임자인 아니타 데쇠 부장은 “이런 시각적인 캠페인의 목적은 흡연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데 있다”며 “이런 캠페인이 실제로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논란의 중심에 선 ‘포장 통일안’
최근 호주에서는 담배의 포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 정부가 올해 4월 “2012년부터 모든 담배의 포장을 흐린 올리브색으로 통일하고 특정 담배 브랜드를 표시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발표한 뒤 정부와 담배 제조회사 사이의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주 정부의 담뱃갑 통일안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제조회사는 담뱃갑에 작은 글씨로 회사 이름만 표시할 수 있을 뿐 로고나 광고성 문구, 눈에 띄는 이미지는 넣을 수 없다. 흐린 올리브색을 담뱃갑의 색으로 정한 이유도 ‘흡연자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색’이란 연구 결과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담배회사들은 옥외 광고를 통해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는 한편 ‘국제 상표권 및 지적재산권법을 침해하는 법안’이라는 이유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 담뱃값과 흡연율의 관계
호주 정부 관계자는 “담뱃세 인상의 영향으로 지난 회계연도(2009년 7월∼2010년 6월)의 담배(궐련) 판매량은 전 회계연도(2008년 7월∼2009년 6월)보다 10억 개비(약 4.7%)가 줄어들었지만 세수는 오히려 600만 달러(0.5%)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호주에서는 이와 함께 물가연동제 세금 제도를 담뱃세에 적용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반으로 1년에 두 차례 자동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정책이다. 물가가 오르면 담뱃값도 따라 오르기 때문에 담뱃값이 ‘상대적으로 싼’ 경우는 없다. 현재 호주의 담뱃값은 25개비들이 한 갑에 12∼15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약 1만4000원에서 1만8000원 정도다. 영국 노르웨이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호주의 성인 흡연율은 16.6%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 “담뱃세 인상 반대없어 흡연자들 동정 못받아” ▼
호주 조세전문가 워런 교수
워런 교수는 “호주에서는 1983년부터 담뱃세를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1999년 이전까지는 담배 중량과 세금을 연동시키는 종량세 제도를 적용했지만 1999년 중반부터 개비당 세금을 과세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호주의 담배 회사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담뱃잎을 부풀려 개비당 무게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00년 이후에는 10%의 소비세(Goods and Service Tax)를 더해 과세하고 있다.
이어 그는 “담뱃세를 물가와 연동시키는 제도는 급격한 계단식 세금 인상에 비해 징세에 대한 국민 반감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며 “정치적으로 고려할 때도 현명한 정책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워런 교수는 또 “요즘 호주 일각에서는 담뱃세를 물가 대신 임금과 연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민의 평균 소득 향상이 물가상승률을 앞서면 물가와 연동한 담뱃세의 ‘체감 인상률’이 낮아진다는 것이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시드니=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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