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새긴 깊이와 멋… 신상좇는 시대 꾸짖는 듯
○ 목욕탕에서 훔쳐본 문신
10년 전쯤 해운대의 목욕탕. 동서 내외가 출근하면서 집 앞의 목욕탕에 꼭 가보라 권했다. 바다 전망이 ‘끝내준다’고 했다. 한적한 오전이라 탕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몸에 대양을 품고 몽롱하게 풀어져 있는데, 웬 구부정한 아저씨가 두 번째로 입탕. 온탕 저쪽에 들어오더니 역시 바깥의 봄날처럼 나른한 품새다.
그 아저씨를 기억하는 까닭은 어깨에 새긴 하트와 큐피드의 화살 때문이다. 아마 저 아저씨도 청춘 시절에는 진한 사랑을, 변치 않을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다. 세월은 사람을 늙게 했으나 촌스러운 문신은 시간을 타지 않았다. 조금 후, 이번에는 덩치 좋은 청년의 입장. 그런데 이 친구 등짝엔 용이 한 마리, 풍덩 탕으로 들어오는 동작이 기세등등하고 위압적이다. 그리고 줄줄이 들어오는 호랑이와 용과 뱀들을 보고 그제야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눈치 채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 부산 친구에게 무섭더라고 했더니 그 정도로 뭘 그러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자기는 등판에다 ‘힘’이라는 단 한 글자를 새긴 사내도 보았다면서.
○ 사물에 새긴 깨달음의 문학
옛사람들이라 해서 그런 심리가 없었을까마는 선인들의 문신술(文身術)은 그 매체나 표현이 달랐다.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이른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윤리감각으로는 귀한 몸에 문신하는 일이 허락될 리 없다.
그 대신 선인들은 몸이 아닌 마음에 새기기를 좋아했고 마음에 새긴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사물의 형체를 이용했다. 아들의 나막신, 며느리의 과자 상자, 허리춤의 호리병, 여행을 함께한 지팡이에 몇 글자를 새겨두었던 것이 그런 예들이다.
○ 기물명의 깊이와 멋
19세기의 학자였던 유신환(兪莘煥·1801∼1859)은 어린 아들에게 나막신을 주면서 이렇게 썼다. ‘미투리 신으면 편안하고, 나막신 신으면 절뚝거리지. 그래도 편안하며 방심하기보다는, 절뚝대며 조심하는 편이 나으니라.’ 어린 아들의 나막신에 새긴 글이라는 뜻의 ‘치자극명(穉子銘)’이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오늘날이다.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품이 부지기수다. 이제 지팡이나 신발과 같은 사물에 깨달음과 소망을 담아 전하는 문화는 쉬 보이지 않는다. 할 일 많고 바쁜 세상에 이런 데 마음 쓸 겨를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정신적인 성숙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야말로 되물을 일이다. 기물명은 역사가 지운 일회용품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은 호랑이 문신보다 우아하다. 사물마다에 마음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깊은 매력을 품고 있는 보물이다.
김동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djk2146@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