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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영계백숙

입력 | 2011-06-10 03:00:00

회춘 돕는 약병아리… 보약이 따로 있나요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 영계백숙이다. 어린 닭이 몸에도 좋고 맛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백숙을 끓일 때 재료가 되는 영계(英鷄)는 병아리에서는 이제 막 벗어났지만 아직 알은 낳지 않은, 한참 피어오르는 닭이다. 그러니까 씨암탉이 되기 직전의 갓 성숙한 닭으로 고기도 가장 부드러울 때다. 영계백숙은 어린 닭이 아니라 고기 맛이 가장 좋을 때의 젊은 닭을 잡아 통째로 삶아낸 음식이다.

그런데 영계가 몸에 좋은 이유는 젊은 닭이고 고기가 연해서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기가 연하니 연계(軟鷄)가 옳은 표현이라고도 하지만 특별히 영계백숙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영계에는 두 가지 뜻이 있고 또 영계와 연계는 엄밀하게 따지면 서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닭에 관한 옛날의 각종 기록을 모아 닭 변증설을 썼는데 여기에 영계가 어떤 닭인지를 풀이해 놓았다. 그는 명나라 때 의사인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인용해 영계 키우는 법을 소개하며 사료로 석영(石英)가루를 먹여 키운 닭을 영계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석영가루를 먹고 자란 닭이 낳은 계란을 먹으면 양기가 되살아나고 허약해진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몸에 살이 올라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며 겨울에 먹으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계란을 먹고도 이렇게 좋으니 그 닭을 잡아 통째로 백숙을 해 먹으면 회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닭이 영계인 것이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영계는 특별히 키운 약병아리다. 그렇다고 약이 되는 닭만을 영계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한자 자전인 이아(爾雅)에는 영계라고 할 때의 꽃부리 영(英)자에 대해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만 아직 열매를 맺지는 않은 상태를 말한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므로 영계라고 하면 어린 닭 중에서도 특별히 병아리에서는 벗어났지만 알을 낳아 본 적이 없는 젊은 닭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닭으로 요리한 백숙을 영계백숙 혹은 연계백숙이라고 한다. 연계백숙이라고 하면 노계처럼 고기가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닭고기를 강조하는 말이니 고기가 연한 어린 닭으로 백숙을 끓였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리고 영계백숙이라고 하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알을 낳기 직전의 고기 맛이 좋은 어린 닭으로 백숙을 끓였다는 의미이거나 약이 되는 닭을 백숙으로 요리했다는 뜻이 된다.

어쨌거나 닭백숙은 고기 맛이 부드러운 어린 닭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 철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신좌모는 문집인 담인집(澹人集)에서 ‘닭고기로 백숙을 만들 때는 어린 닭으로 끓여야 좋다’고 했다. 병아리 상태에서 갓 벗어난 젊은 닭이 바로 보약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백숙을 먹고 난 후에는 닭을 푹 곤 국물에 쌀을 넣고 끓인 닭죽으로 마무리를 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닭고기 국물로 죽을 끓이면 양기의 진수를 흡수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중국 임신부들은 몸보신을 위해 닭죽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임신부라면 아이 피부가 닭살이 된다며 기겁을 할 일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