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빛둥둥섬 패션쇼 현장취재듀얼리즘=<상반된 소재로 매치한 패션>
서울 서초구 세빛둥둥섬에서 2일 열린 펜디쇼는 상반된 소재와 색상을 세련되게 매치해 펜디의 브랜드 철학인 듀얼리즘(이중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런웨이를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만들어 세빛둥둥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점도 눈길을 끈다. 펜디 제공
그랬던 펜디가 4년 만에 선택한 곳은 한강의 세빛둥둥섬이었다. 펜디는 유럽에서 한류(韓流)가 거세게 일고 있는 점에 주목했고, 유(流)는 물결을 의미해 한강을 떠올렸다. 마침 한강에 플로팅 아일랜드인 세빛둥둥섬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돼 서울시에 패션쇼를 제안했다. 서울시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모피에서 출발한 펜디가 마련한 2011년 가을겨울 패션쇼에는 모피 제품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세빛둥둥섬에서 모피가 나오는 패션쇼가 열린다는 소식에 국내 동물애호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펜디쇼는 큰 사고 없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 만든 모피(fur)를 입어야겠습니까?”
“지금 (펜디쇼) 입장하는 분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노 퍼(No, fur)! 노 퍼(No, fur)!”
2일 오후 7시 반경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둥둥섬 입구 양쪽에는 동물애호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앳된 목소리로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예뻐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시위 참가자들이 데리고온 강아지들도 여러 마리 있었다. 경찰과 함께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ㄱ
이번 펜디쇼에는 처음으로 어린이 모델이 등장했다. 펜디는 선글라스, 시계 등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남성 모델도 다수 출연시켜 펜디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펜디 제공
세빛둥둥섬으로 들어가자 건물 로비에는 펜디의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코트와 조끼는 물론이고 핸드백까지, 모피를 다양하게 활용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모피는 펜디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상반된 소재와 색채, 현대적으로 조합
패션쇼장은 원형이었다. 런웨이도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설치돼 이색적이었다. 좌석도 런웨이를 따라 둥글게 배치됐다.
조명이 꺼지고 쇼가 시작됐다. 모피를 비롯해 가죽으로 만든 원피스, 바지, 재킷 등 모피와 가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펜디 특유의 개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쇼는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됐다.
색상이나 소재가 상반된 아이템들을 매치해 펜디의 브랜드 철학인 ‘듀얼리즘(Dualism·이중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모피와 가죽 이외에도 다양한 재질의 옷감을 풍부하게 사용했다. 검은색과 갈색, 회색 등 차분한 색상은 물론이고 파란색과 빨간색, 보라색 등 선명한 색채가 조화를 이뤄 세련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모피와 가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두꺼운 소재로도 실루엣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한국인 모델인 장윤주 한혜진 송경아 이현이를 비롯해 일본인 모델 아이 도미나가, 중국인 모델인 쑨페이페이 등 아시아 유명 모델들이 런웨이를 누볐다.
어린이 모델들도 등장해 깜찍함을 더했다. 펜디쇼에 어린이 모델이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급 아동복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비쳤다. 남성 모델이 다수 출연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펜디 측은 “남성과 어린이 모델이 착용한 지갑, 구두, 선글라스, 시계 등은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쇼를 위해 특별히 만든 아이템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세빛둥둥섬을 연결한 다리에서는 북을 치는 공연이 열렸다. 쇼가 끝난 후 열린 파티에서는 세계적인 DJ 드미트리가 등장했다.
마이클 버크 펜디 최고경영자(CEO)는 “펜디는 언제나 도전과 혁신을 추구해 왔다”며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이를 감수하지 않으면 진보한 패션을 보여줄 수 없는 만큼 계속 이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며 “밀라노, 마이애미 등에 이어 한국에서도 대학생 디자인 콘테스트를 열어 우승자에게 펜디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만리장성을 뛰어넘지 못햇다
한국 유명 모델인 한혜진(오른쪽), 송경아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펜디 작품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올해 펜디 쇼는 만리장성 패션쇼 이후 열리는 특별한 행사란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물론 이번 쇼도 매우 멋졌다. 장소 역시 플로팅 아일랜드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을 찾기는 어렵다고 했던가. 2007년 쇼를 능가하는 새로움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플로팅 아일랜드의 특성을 100% 활용하진 못한 것 같았다. 원형 런웨이라는 점 외에는 만리장성 쇼와 같은 파격을 찾기가 어려웠다. 실내에서 쇼가 진행됐기 때문에 쇼만 놓고 볼 때는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열렸다는 점이 부각되지 못했다. 쇼가 끝나고 주요 인사들이 식사를 하거나 파티를 연 공간에서는 창문 너머로 한강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세빛둥둥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활용하거나 야외에서 패션쇼를 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강이라는 물의 이미지를 담아내면서 세빛둥둥섬의 야간 조명이 어우러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행사장 입구에는 규모는 조금 줄었지만 모피 반대운동 시위자들이 촛불을 들고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패션쇼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세빛둥둥섬에는 노란색 조명으로 만든 ‘FENDI’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떠 있었다.
미국 시트콤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여주인공 4명 가운데 1명인 서맨사(킴 캐트럴)는 하얀 모피 코트를 입고 오랜만에 방문한 뉴욕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던 중 모피반대 시위자에게서 붉은색 페인트 세례를 받는다. 아끼던 모피 코트가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서맨사는 울먹이면서도 이렇게 외친다. “난 이래서 뉴욕이 좋아!”
특수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모피 패션을 즐기는 이들과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공존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패션쇼는 ‘펜디’라는 브랜드와 한강, 그리고 서울을 전 세계 패션계가 주목하게 한 동시에 모피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펜디 브랜드는::
1925년 로마서 가죽제품 가게로 출발, 2001년 LVMH에 인수돼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