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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장환수의 ‘스포츠 수학’]프로축구 승부조작의 이면

입력 | 2011-06-11 03:00:59

고작 1.2배 수익률? 몇 번만 쌓으면 눈덩이 수익




운동선수 하면 사람들은 멋지게 다듬어진 근육부터 떠올릴 것이다. 스포츠는 인체의 능력을 이용해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에겐 숫자가 먼저 보인다. 스포츠와 숫자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신문을 펼쳐 숫자가 가장 많이 들어간 지면을 한번 찾아보라. 경제면이 아니라 체육면이다. 초보 체육기자들이 겁 없이 덤벼들다가 난관에 부닥치는 첫 관문이 바로 복잡한 숫자들과의 싸움이다. 스포츠와 숫자의 관계를 알고 보면 스포츠가 훨씬 잘 보일 것이다.

▶승부조작을 위해 프로축구 선수들을 매수한 브로커들이 창원지검에 적발된 게 처음 알려진 지난달 25일. 불법 베팅의 무대는 합법 스포츠토토가 아닌 불법 스포츠복권 사이트였을 것으로 누구나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그날 밤 본보는 불법 베팅이 스포츠토토에서 이뤄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스포츠레저부 부장인 기자도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스포츠토토라면 각종 규제 장치가 있어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왜 이들은 사설 토토가 아닌 스포츠토토를 이용했을까.

▶불법 베팅이 제도권 내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스포츠토토 직원들은 곤혹스러워했다. 모기업인 오리온의 담철곤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들은 스포츠토토는 사행성 방지를 위해 다양한 베팅 제한 장치를 두고 있다고 강변했다. “개인의 1회 최다 베팅 금액은 10만 원이다. 토토 판매점에는 10분에 100만 원어치 이상을 발매할 수 없도록 전자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한 판매점에서 특정 조합이 계속 나올 경우에도 발매가 일시 중단된다. 특정 조합에 10억 원이 채워졌다면 더는 발매가 불가능하다. 창원지검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발표한 4월 6일 컵대회 부산-광주, 대전-포항 2경기가 조합된 베팅의 승무패를 모두 맞힌 배당률은 다른 회차에 비해 오히려 낮은 2.2배에 불과했다. 고작 원금의 1.2배 먹으려고 그 위험한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을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승부조작을 기획한 배후세력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원금의 1.2배는 주식으로 치면 120%의 수익률이니 엄청난 고배당이다. 하지만 매수, 매도 금액의 0.02%도 안 되는 온라인 증권사의 주식 거래 수수료와는 달리 승부조작은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브로커들은 당시 승부조작 대가로 광주와 대전 선수들에게 각각 1억 원과 1억2000만 원을 줬다. 판매점을 직영하지 않는다면, 거액을 쪼개서 베팅해준 사람들에게 수고비(5% 정도로 알려짐)도 내야 한다. 배당금이 3억 원을 초과하면 33%의 세금 폭탄을 맞지만 이는 10만 원 이하의 쪼개기 베팅으로 피할 수 있긴 하다. 결국 승부조작 세력은 당시 베팅에 3억 원을 투자했다면 6억6000만 원을 수령했을 것이고, 선수 매수 비용(2억2000만 원)과 판매점 수고비(1500만 원)를 제외한 1억25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120%를 고스란히 번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적은 41.7%를 챙긴 것이다. 4억 원을 베팅했다면 수익률은 60%(2억4000만 원)로 올라가긴 하지만 여전히 적은 편이다.

▶승부조작 세력이 큰 리스크에 상응한 대박 수입도 기대하지 못하면서 굳이 스포츠토토에 베팅을 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입에 있다. 당시 컵대회 베팅은 배당률이 미리 정해진 프로토 승부식이었다. 환급률이 고정된 일반 토토의 배당률은 특정 조합에 거액이 몰릴 경우 극도로 낮아지지만 프로토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스포츠토토 측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또 비교적 승부가 단순한 축구의 승무패만 맞히면 되는 승부식이라 선수를 매수한 입장에선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굳이 사설 토토에서 아귀다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박 영화 주인공들은 대체로 잭팟을 쫓는다. 홍콩 영화는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허구가 많이 들어간다. 흥행을 위해 극적인 요소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타짜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에선 현실의 도박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지존’ 알란 탐은 포커의 가장 높은 족보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로 상대를 제압한다. ‘도신’ 저우룬파(주윤발)와 그의 제자인 ‘도협’ 류더화(유덕화)는 셔플을 하면서 카드의 배열을 바꾸는 일명 ‘스테키’ 능력을 갖고 있다. ‘도성’ 저우싱츠(주성치)는 한술 더 뜬다. 카드를 손으로 비벼야 해 소란스럽긴 하지만 패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다.

▶실제 타짜의 세계는 영화와는 달리 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상대보다 한 끗만 높으면 된다. 나쁜 패라도 상관없다. 타짜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한 판으로 대박을 내는 일은 꿈도 꾸지 않는다. 한 판으로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승부는 현실에선 없다고 보면 맞다. 그래서 타짜들은 1등보다는 2등, 3등을 선호한다. 중독성이 심한 도박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1등은 ‘고객’의 원성을 사게 된다. 타깃이 된다. 같은 이유로 전승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 타짜가 아니다. 한 번씩 잃어주기도 하면서 아주 조용히,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는 게 타짜다.

▶하지만 이들 승부조작 세력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브로커와 선수들까지 베팅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타짜는 극소수여야 하고, 맞대결은 피하는 게 불문율인데 말이다. 결국 승부조작 세력이 선수 매수 자금만 대고 총액 10억 원 한도에 걸려 정작 베팅은 못하게 되자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알력이 일어나면서 창원지검에 포착됐다. 이는 바꿔 말하면 승부조작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 만연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게 현재까지 드러난 프로축구 승부조작의 속사정이다.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여기서 싱겁지만 문제 하나. 알란 탐과 저우룬파, 저우싱츠가 맞붙는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알란 탐은 상대의 패를 한눈에 알아채고, 저우룬파는 자신의 패를 조절한다. 반면 저우싱츠는 평소엔 서툴러 보이지만 간절히 원하면 패를 바꿀 수 있다. 수학도 깊이 들어가면 철학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